제2의 성폭력

淸河1999년 대검 강력부가 전국 검찰과 경찰에 내려 보낸 ‘성범죄 피해자 보호지침’에는 대질신문은 극히 예외적으로 시행토록 돼 있다. 특별한 이유없이 합의를 종용해 특정인을 비호한다는 의혹을 사지 않도록 할 것도 명시했다. 또 공소유지에 불필요한 질문을 금지하고 조사과정에 가족이나 친지 등 ‘신뢰인’이 입회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이 지침이 일선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성폭력 당한 L씨는 경찰서에 들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해자가 버젓이 형사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담당 형사는 태연하게 L씨에게 “(가해자)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다행히 동행한 여성단체 관계자가 강력히 항의해 그나마 마주앉을 수 있었다. 조사에 들어가자 담당 형사는 L씨에게 “소설(피해사실) 잘 읽었다”며 “요즘 심각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합의를 종용했다.

직장내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N씨도 경찰서에서 또 망신을 당했다. 성폭력피해상담소 관계자와 함께 경찰서에 갔으나 “여기는 부모님도 못들어오는 곳 ”이라며 ‘신뢰인 ’으로 동행한 상담소 관계자를 받아주지 않아 결국 서너시간을 혼자 불안에 떨었다.“몇 번을 했느냐”는 등 조사과정에서의 노골적인 표현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한다.

K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K씨는 귀가길에 잠시 벽에 붙은 벽보를 보고 있다가 한 남자가 가슴을 만지는 봉변을 당했다. 마침 지나가던 한 시민의 도움으로 추행범을 붙잡아 경찰서로 갔다. 그러나 담당 경찰은 실실 웃으며 “만질때 왜 가만히 있었냐”는 등 불필요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추행 당시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어서 저항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경찰은 그저 재미있는 일이라는 식의 조사태도를 보였다.

이 세가지와 비슷한 사례가 완전히 사라졌다면 몰라도 대검의 ‘성범죄 피해자 보호지침’이 한군데서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점점 어두워진다.

여성단체에 찾아온 상담의 10건중 5∼6건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느꼈던 모욕감을 호소하는 ‘상담’이라니 고발못한 성폭력·성추행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강요하는 질문은 피해여성을 두번 울리는 ‘제2의 성폭력’이다. 선량한 시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는 좋은 나라의 좋은 경찰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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