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신용카드 관련 정책이 줏대없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당초 신용카드 업계의 무분별한 판촉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신용카드 길거리 판매를 규제하기로 했던 방침을 슬그머니 바꾼것은 정책 난맥을 드러낸 하나의 좋은 예다.
금감위는 그동안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신용카드사들의 무분별한 거리 회원 모집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지난 5월 관련 규정에 이를 명문화 시키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럼에도 지난 13일 금감위 정례회의에서 ‘여신전문금융업 감독 규정’을 개정하면서 이 방침을 바꿔 사실상 길거리 판매를 계속 허용한 셈이 됐다. 불과 두달만에 정부의 주요정책이 갈팡질팡 한 것이다.
금감위는 신용카드의 길거리 판매 규제가 신용카드사의 정상적인 영업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 등 다른 법령으로도 규제가 가능하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로 개정안을 철회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억지변명으로 금융감독 당국으로서는 할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업계의 로비에 따라 정책이 바뀌었다는 의혹을 사기 쉽다. 영업규제는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또 각종 법규는 각기 제정취지가 있게 마련이거늘 ‘금융사항’을 도로교통법으로 규제 가능 운운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다.
신용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함께 신용카드업계가 호황을 맞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과열경쟁은 어느정도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업계의 과당경쟁은 그 도가 지나쳐 시장기반 확대라는 순기능보다 오히려 신용카드 산업의 장기적 안정과 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이 우려되고 있다.
우선 걱정되는 부작용은 신용불량 고객의 양산이다. 가입자의 소득 수준이나 신용상황을 전혀 도외시한 채 마구잡이로 발급한 신용카드는 필연적으로 신용불량 고객의 폭증과 연체 증가를 초래, 경영수지를 악화시킬 게 뻔하다. 그럼에도 카드사들이 무모하게 과당 판촉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같은 수지악화 요인을 엉뚱하게도 신용 우량 고객들에게 모조리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 금리가 아무리 내려가도 카드사의 수수료와 연체금리가 터무니없이 높은 것은 카드업계의 이같은 경영구조적 병폐와 도덕적 해이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따라서 이같은 업계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선 낭비적인 과열 판촉행위의 규제가 절실하다. 청소년의 과소비 방지를 위해서도 보다 합리적인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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