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

한여름철 심산유곡에서 즐기는 ‘탁족(濯足)’은 산중에서의 피서로는 최고의 방법이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에 두 발을 담그고 있으면 시원하다 못해 발이 시렵기까지 하다. 한방에선 탁족이 건강에도 매우 좋다고 본다. 발은 온도에 민감해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진다. 또 흐르는 물은 간장·신장·방광·위장 등의 기(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한다고

한다. 탁족을 소재로 한 ‘탁족도(濯足圖)’를 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화제(畵題)중의 하나인 탁족도는 흐르는 강물이나 계곡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비나 은사(隱士)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거든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발을 씻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속을 떠난 은일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면에 술을 받쳐들고 있는 동자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 먼 여행에서 돌아와 발에 묻은 흙과 먼지를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간소한 자연경(自然景)을 배경으로 하여 인물 중심으로 구성되며, 인물은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올린 다리를 꼬아 물에 담그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상체에 비하여 하체가 빈약하게 묘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를 중심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 이경윤(李慶胤)의 ‘고사(高士)탁족도’와 ‘탁족도, 이정(李湞)의 ‘노옹탁족도’, 작자 미상의 ‘고승탁족도’, 그리고 조선 후기 최북(崔北)의 ‘고사탁족도’등이 유명하다.

예전 수원사람들은 수원의 주산 광교산 계곡에서 탁족을 즐겼다. 아니면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망천(忘川·수원천의 옛 이름)에서 탁족을 하며 여름을 났다. 부녀자들은 밤이 깊어지면 삼삼오오 수원천에서 등목을 했었다. 수원시가 전개한 ‘수원천 살리기’운동이 성공하여 지금도 국립보훈원 앞 수원천에는 밤이 되면 주민들이 탁족을 즐기는데 그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다. 그런데 탁족은 꼭 계곡의 물이 아니어도 된다고 한다. 샤워기의 찬물로 발바닥을 골고루 자극해도 고인물로 씻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 부부간에는 찬물로 상대방의 발을 씻어주면서 발바닥을 두드려주면 좋다고 한다. 한여름 밤 탁족으로 부부의 정을 더욱 도탑게 하는 것도 소박한 사랑법 이겠다.

/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