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박정희 정권은 중화학 공업의 고도성장과 함께 식량증산을 녹색혁명으로 추진했다. 그 무렵의 논 농사는 농민이 지었다기 보단 군수가 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지정리 현장에 텐트를 치고 군수가 먹고자며 공사를 독려했고 농구화 바람으로 논두렁을 타고 다니며 병해충을 살피는 등 작황에 신경깨나 썼다. 물론 병해충 피해면적 같은 불리한 내용은 줄여서 보고하는 사례가 많았다. 작황이 나쁘면 십중팔구 좌천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식량증산에 괄목할 실적을 올리면 영전되는 바람에 과장해 보고 하기도 했다. 우리의 농업통계에 신뢰성이 의심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 시작됐다.

또 지난번 같은 수해가 나면 문책이 두려워 피해규모를 줄여서 보고하는 통에 재해대책비를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는 수가 잦았다. 사령장 한장으로 자리를 박탈 당하는 관선단체장들의 폐습이긴 했으나, 요즘 민선단체장들 가운데서는 자리가 보전된 것을 빌미삼아 숫제 주민피해에 배짱을 내미는 시장·군수가 적잖아 탈이다.

역시 박정희 정권때 얘기다. 경제동향 보고를 며칠 앞둔 X경제기획원 장관이 고민에 빠진 일이 있었다. 박대통령이 추상같이 엄명한 물가안정 대책이 예상치 보다 올라 마지노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생 병이 나다시피한 X장관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이 있어 질책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물가관리 품목의 재정비였다. 관리대상 품목을 마지노선에 맞추어 선정함으로써 만일의 경우에도 허위보고는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재선정의 이유는 그럴사한 구실을 달았을 것이다.

지난 6월 중 실업률이 3.3%로 실업자는 74만5천명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1997년12월의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다는 것이다. 취업자는 줄었는데 실업률은 낮아졌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정부가 다짐한 일자리 200만개 창출도 공염불이 된지 오래다. 젊은 IT기술자가 취업을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실정이다. 졸업을 앞둔 대학 4년생들은 취업을 위해 혈안인 판이다. 실업률이 준 것은 일자리가 늘어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없어 아예 구직을 포기한 바람에 통계대상에서 뺐기때문이라고 한다. 국가 정책의 기조가 되는 각종 통계라는 것이 자고로 이 모양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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