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승용차만 타고 다니는 벼슬아치들은 아마 서민들 사정을 모를 것이다. 가로등에 언제 또 감전사할 줄 모르는 우중 행보의 불안을. 지난번 호우때 수도권 일원에서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감전사 사고투성이 이후 “이젠 길 걷기도 겁이 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가로등 없는 길이 없으니 그렇다고 가로등을 피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에너지, 즉 전기가 도체사이의 절연이 잘못 됐거나 손상돼 전류가 새어 흐르는 현상이 누전이다. 살다보니 어쩌다가 이젠 가로등 누전으로 생목숨을 잃는 험한 지경이 다 됐다.
더욱 한심한 것은 책임회피다. ‘익사했다’느니, ‘누전이 아니다’느니, 심지어는 ‘불가피했다’느니 하는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나온다. 백주 대낮에 무고한 시민들이 대로상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비명횡사 했다. 그런데도 책임지겠다는 데가 단 한군데도 없다. 재수없는 팔자 소관으로 돌리란 말인지, 도대체가 뻔뻔스러워도 너무 뻔뻔하다.
전기안전공사 자료에 의하면 올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전국의 가로등 8천755개소를 점검. 38.8%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호등의 부적합 판정률은 이보다 많아 4천510개소중 57.6%나 된다. 가로등이나 신호등 관리는 기초자치단체의 소관이다. ‘설마’하고 그대로 놔두었다가 참변을 일으키고 만 것이다. 앞으로 또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이 없다. 지역주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자치단체가 주민 생명의 위협요인을 묵과하였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혐의 성립 여부를 검토해볼만 하다.
대저 가로등이나 신호등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변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서민들이 여전히 불안해 하는 것은 사고이후 안전대책을 강구 했다는 후속조치를 아직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기 보단 다시는 이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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