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도둑

가마니 곡식은 훔쳐가도 늘어놓은 곡식은 안훔쳤다. 늦가을 논바닥 곁에 타작한 벼를 말리기 위해 멍석에 늘어놓곤 했다. 며칠동안 말려야할 벼를 날마다 퍼담기가 번잡하므로 밤엔 멍석 한쪽으로 뒤덮어 놓곤 했다. 그시절 이라고 밤도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멍석의 벼를 훔쳐가는 일이란 없었다. 만일에 가마니에 담아 두었다면 그때도 손을 타기가

십상이었다.

가마니에 담은 곡식은 수확이 완전히 끝난 것을 의미한다. 도둑인심이라 하면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수확이전의 곡식은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그 무렵의 도둑 인심이었다. 무슨 소리냐며 요즘 시절이 한창인 참외 수박밭의 도둑을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참외 수박 도둑이 아니고 ‘참외서리’라고 하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치부했다. 지금보다 못먹고 못살던 때도 그런 인심의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의 ‘참외서리’는 어김없이 절도로 몰린다.

어쨌든 늘어놓은 곡식은 손을 대지않던 도둑인심이 사나워져 이젠 영락없이 손 타는 것으로도 모자라 밭도둑까지 생겼다. 밭에서 한참 자라는 고추나 깨같은 곡식을 차량까지 대놓고 송두리채 뽑아 실어가는 천하에 몹쓸 도둑이 생긴지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점점 더해가는게 사회 병리현상의 심각성이 있다. 요즘은 인삼밭 도둑이 설치는 모양이다. 이런 도둑은 남이 애써 가꿔놓은 농사를 일시에 폐농시켜 살림을 거덜나게 만든다. 죄질이 나빠도 아주 나쁜 악질사범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밭도둑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할 판이라는 말이 안나온다는 보장이 없을 것같다. 주인이 지킨다지만 지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속담에 ‘도둑 하나를 열이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병리현상이 어쩌다가 이토록 타락했는지 위정자들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찰의 방범활동 강화다. 밭도둑을 방범활동의 정식 항목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제한된 경찰 인력에 광활한 밭도둑 우범지대를 차량순찰 하기란 물론 어려울 것이다. 애로가 많겠지만 그래도 농민이 의지할 곳이란 경찰밖에 없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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