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살리자> 야금야금 사라지는 그린벨트

우리나라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집중 현상은 강한데 쓸만한 토지가 적은 나라에서의 토지정책은 국민의 생존권을 좌우하는 국가대계와 직결된다. 그린벨트는 그 자체가 삶의 질을 담보해주는 몇 안되는 우리의 환경재산이다. 환경재산은 한번 잃으면 되찾을 수 없는 보물이다. 이러한 그린벨트가 최근 지자체들의 골프장 및 미니신도시, 각종 위락시설, 주민 기피시설 건설계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린벨트는 제도 도입 이후 지금까지 48회에 걸친 규제완화 조치가 있었다. 그 사이 대도시의 확산을 막고 자연환경을 보존한다는 당초의 취지는 상당부분 훼손됐다.

지난 99년말 헌법재판소가 ‘그린벨트 헌법불합치’판정을 내린 것과 그린벨트의 엄청난 사회적 비용에 관한 개발론자들의 주장이 대폭 수용된 것이 그린벨트 해제 결정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후 1년반이 지난 지금 각 지자체들은 미리 정한 사용용도에 맞춰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는가 하면 일부 지자체는 그린벨트 개발을 위한 민자유치 설명회까지 개최하는등 그린벨트 훼손에 지자체가 앞장서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 4월께 그린벨트내 대지에 주택이나 식당, 병원 등 근린생활시설을 가릴 것 없이 지을 수 있게 하는 규제완화조치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별 지역이기주의와 재산권행사에 따른 마구잡이식 개발, 투기의 한바탕 회오리로 인해 그린벨트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도내의 경우 그린벨트 면적은 1천302㎢로 전국 그린벨트의 24.1%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71년 7월30일 개발제한구역이 지정 고시된 이후 지금까지 경기북부지역에서만 여의도 면적의 3배 가량인 257만288평이 훼손됐다.

경기북부지역의 자치단체들은 주민들의 개발제한구역 훼손에 대해서는 도시계획법을 적용해 강력한 단속을 펼치고 있으나 공공기관 청사, 종합운동장, 취수장 등 각종 공공시설물은 마땅한 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개발제한구역안에 지어지고 있어 형평성 문제까지 일고 있다.

전체 면적의 78%인 63.89㎢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는 의정부지역의 경우 전철차량기지, 농업기술센터, 의정부교도소, 가스공급시설 설치 등을 이유로 모두 75건 21만6천398평이 훼손됐다.

고양시는 경부고속철도기지창·난지하수처리장·체육공원·지하철공사 차량사무소시설 등으로 99만5천461평이 훼손됐으며 남양주시는 남양주 제2청사·법원·교육청·경찰서·종합운동장·하수처리장 등 40개의 공공시설이 개발제한구역내에 건립돼 33만1천평이 훼손됐다.

또 구리시는 소방서·환경사업소·쓰레기소각장·마을회관 등 모두 25건 4만1천862평이 훼손됐으며 양주군은 군 신청사 등 1만491평이 각각 훼손됐다. 하남시도 우체국·소각장·분뇨처리장·동사무소 등 각종 공공시설물을 개발제한구역 97만5천76평에 건립했다.

뿐만 아니라 부천·광명·안산·남양주시 등 도내 11개 시·군이 그린벨트에 추진중인 골프장만도 모두 23개로 총면적은 416만평이나 된다.

이중 하남시가 3개, 시흥시는 6개, 안산시는 2개 골프장 건립을 도에 요청한 상태다.

하남시는 민자 유치로 경전철 건설을 추진하면서 그린벨트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어 건설업체에 수익성을 보완해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성남시는 여수동 7만평에 시청,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 공공청사가 입주하는 행정타운 건립을 추진중이며 의왕시는 백운호수 주변 35만평 그린벨트에 경정장, 골프장, 유스호스텔 등을 건립하기로 하고 기업체를 대상으로 민자유치 설명회까지 개최했다.

그린벨트 5만8천여평에 경륜장 설치를 정부로부터 허가받아 놓은 광명시도 또다른 지역의 그린벨트를 풀어 ‘음반밸리’를 만드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일부 자치단체는 또 주민 반대로 입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던 하수종말처리장, 소각장 등 이른바 ‘기피시설’을 민원이 적은 그린벨트에 집중적으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성남시는 그린벨트에 쓰레기소각장 설치를 계획하고 있으며 부천시·남양주시·구리시·광주군 등 도내 자치단체들은 그린벨트 16곳에 하수종말처리장 설치를 추진중이다.

이처럼 정부가 주민의 생활불편을 덜고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한다며 개발제한구역에 공공시설물 설치를 가능하게 한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이 엉뚱하게도 그린벨트 잠식의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자치단체는 개발제한구역안에서 학교 등의 공익시설과 도로, 상·하수도시설, 폐기물처리시설 등 공공시설은 물론 골프장을 비롯한 실외체육시설 조성 계획을 수립해 광역단체를 거쳐 건설교통부의 최종 승인을 받으면 행위허가를 내줄 수 있게 돼있다.

여기에다 재정문제에 시달리는 자치단체로서는 엄청난 지방세 수입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도가 지난해 고양시 소재 골프장을 조사한 결과 18홀 규모의 회원제 골프장 준공때 내는 지방세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포함해 200억원 규모나 되고 연간 종합토지세와 재산세로 4억5천여만원의 고정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대해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기피·혐오시설의 경우 그린벨트내 설치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관공서나 위락시설 등을 건설하기 위해 그린벨트를 마구 훼손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녹색연합 관계자는 “그린벨트내 산림의 면적이 1%만 줄어들어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2만843t이 줄게 되며 이같은 수치는 1만5천241명이 한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양과 맞먹는다”며 “그린벨트 해제가 대기 정화기능과 지구온난화 현상의 악화는 물론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침수피해 등 환경재앙의 단초를 제공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몇년전만해도 일상에 찌든 도시민들이 답답한 빌딩 숲속을 벗어나 한적한 외곽도로를 달리다보면 주변으로 넉넉한 숲과 들판에서 휴식을 찾고 신선한 공기를 제공받아왔던 곳이 그린벨트다.

그린벨트를 새로운 틀의 도시환경구역으로 적극적으로 가꾸되 계획이 없이는 개발이 없도록 해야하고 한뼘의 땅이라도 아끼는 국토정신이 정책목표의 근간이 되도록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관식기자 ks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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