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장군 묘

바보 온달의 얘기는 삼국사기에 전해 그가 평강공주와 결혼, 고구려 평원왕의 부마가 된 것은 잘 아는 일이다. 공주가 시키는대로 무술을 연마하여 임금이 친림한 사냥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마침내 장군이 된 것도 다 아는 이야기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 온달산성(사적 264호)은 일명 아단성으로 온달이 전사(AD 590년)한 곳이다. 산성밑 남한강변에 장군이 수련했다는 석회암 동굴(사적 261호)이 있고 상리나루는 장군을 장사지낸 곳이다. 상리마을엔 그가 윷놀이 윷판을 그린 쉰돌이 있고 인근의 군간교가 있는 옛 군간나루는 장군이 군사를 주둔시켰다 해서 군간(軍看)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군간교 건너의 선돌은 장군을 도우려고 달려가던 누이동생이 패전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 굳어 돌이 됐다는 전설이 전한다. 온달이 여기에 온 것은 후주(後周)의 무제가 고구려에 쳐들어온 것을 선봉에 서서 물리치고 난 뒤였다. 왕에게 아뢰기를 “신라에 빼앗긴 계립현(鷄立峴·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출정했었다. 그러나 신라군의 유시에 맞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사한 장군의 관이 들리지 않아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길이 이미 갈라졌으니 이제 떠나세요”하니까 움직였다는 애틋한 설화가 전한다.

한양대 박물관팀이 이곳에 있는 온달장군의 묘를 곧 발굴할 것이라고 한다. ‘태장이 묘’라고도 하는 온달 묘는 고구려 계통의 방단형 적석총, 즉 돌무덤이다. 발굴 동기는 북측이 온달과 평강공주 부부의 묘가 평양근교 동명성왕릉 부근에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북측은 단군의 유해를 발견했다면서 단군릉을 조성한 바가 있다. 온달의 묘를 확인하기 위해 파헤치는게 글쎄, 진위를 가리는게 문화재 보호보다 더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매장문화재는 발굴로 드러나면서부터 훼손되기 때문이다. 온달장군이 전사한지 1천411년째다. 천년이 훨씬 넘는 천고의 비밀을 다투는 인간들이 극성이다. 기왕 발굴할 요량이면 유구, 유물에 손상이 덜 가도록 하는 최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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