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티모르의 독립영웅 사나나 구스마오가 건국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전한다. 당선이 가장 유력시 되는 대통령 후보인데도 나서지 않고 사진작가로 제2의 인생을 걷겠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정치집회 때면 군중앞에 나서기보단 인파를 헤집으며 사진기자와 나란히 카메라 앵글을 잡기에 바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정치불참 선언이 사실이 될지 어떨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새겨 들을만한 말 한마디는 있다. 대통령 불출마 천명을 통해 “과거 신생국가의 자유투사들이 독립 후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혼란에 빠진 사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만 해도 그러하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많은 분들 가운데 광복 후 정치에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는 혁혁한 공적을 남겼으면서도 정치가로서는 실패를 거듭했다. 집권의 말로를 독재로 장식한 이승만이나 재야의 김구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남북합작을 주장하며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것이 그같은 사례다. 북측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수립돼 불행히도 남북합작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화투쟁의 정치가와 집권의 정치가가 또한 다른 듯싶다. 김영삼(YS), 김대중(DJ)은 온갖 핍박을 무릅쓰가며 민주화 장정을 이끈 민주투사의 거목이다. 민주화운동으로는 청사에 남을만 하다. 그러나 두 분이 다 대통령으로는 성공한 대통령의 평가를 받기에는 무리일 것 같다. 독립운동가가 유능한 정치가가 못되고 민주화운동가가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지못하는 것은 학문적 연구과제가 될만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과는 다른게 분명하다. 더욱 경계되는 것은 권력 중독증이다. 거머쥔 권력에 스스로 삼가지 못하고 심취하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동티모르의 구스마오가 경고한 자유투사의 권력 경계는 진리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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