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진명(金辰明)의 장편소설 ‘황태자비 납치사건’에 나오는 명성황후 시해 대목은 읽기에도 끔찍하다. 일본인의 만행이 독자들을 분노케 한다. 민망스럽지만 인용하면 이렇다. “스에마쓰 장관님, 정말로 이것을 쓰기는 괴로우나 건청궁 옥호루에서 민비를 시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보고를 드리고자 합니다. 민비는 강제로 저고리가 벗겨져 가슴이 훤히 드러난 상태로 머리채를 잡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낭인 하나가 거센 발길로 민비의 가슴을 밟고 짓이기자 또 하나의 낭인이 민비의 가슴을 칼로 베었습니다. 일은 그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왕세자를 불러 죽은 여인이 민비임을 확인한 낭인들은 모두 민비의 주위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의 가장 고귀한 여인을 앞에 두자 갑자기 숙연해졌습니다. 왕비를 시해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조선 제일의 미녀를 앞에 두어서였는지…낭인들은 민비의 하의를 벗겼습니다. 한 낭인이 발가벗겨진 왕비의 음부를…숫자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몇몇 낭인이 결국은 바지를 벗고 성기를 꺼내 왕비의 희고 깨끗한 몸에…정액으로 얼룩진 조선 왕비의 시체를 앞에 놓고 낭인들은 대일본 만세를 불렀습니다. ”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서 일본의 낭인들이 조선의 명성왕후를 시해할 때,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전직 법제국 참사관이자 당시 조선 정부의 내부고문관이었던 이스즈카 에조가 한성공사관에서 법제국 장관이었던 스에마쓰 가네즈미에게 보낸 전문이라고 작가는 쓰고 있다. 한성공사관이 명성황후 시해사건 전말을 본국에 보고한 5장의 전문 중 일본이 극비문서로 보관했다는 ‘한성공사관 제435호 전문’내용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과정을 고발한 이 소설은 일본의 비윤리성과 잔학성을 한국인들의 비겁함과 함께 질타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황후를 모욕하고 시해할 때 조선 최고의 정예병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느냐고 꾸짖고 있다.그러니까 오늘날도 일본이 우리를 이토록 혐오하고 멸시한다고 개탄한다. “우리는(일본만행을)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잊어 버렸다”고 스스로 조소하면서도‘황태자비 납치사건’은 항일과 극일의 길을 동시에 일러준다.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힘이다.

/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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