盜·監聽이 판치는 나라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특히 개인의 사생활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망각한 행위로써 규탄받아야 마땅하다. 더구나 인권국가를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국가일수록 기본권을 침해하였을 경우 문제가 크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예외없이 도청(盜聽)과 감청(監聽) 문제가 단골메뉴로 등장하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도·감청 문제는 국정감사때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정부는 이를 시정하겠다고 하였으면서도 아직도 시정은 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년 상반기에 이동통신회사에서 수사기관에 내준 통신자료가 무려 9만7천4백여건으로 지난해에 비하여 80%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뿐아니다. 개인의 예금계좌 추적도 무려 10만건이 넘었으며 이중 91%는 영장없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도청과 감청 그리고 계좌추적에 있어서 사법부가 기본권을 보호할 강한 의무를 행사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이 감청을 청구한 847건중 95.1%인 806건에 대하여 법원이 영장을 집행한 것은 과연 법원이 국민의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의문을 제기치 않을 수 없다. 계좌 추적의 경우도 법원은 영장이 청구된 1만5천4백여건중 97.6%에 대하여 영장을 발부했다.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범죄혐의를 손쉽게 찾기 위해 도청, 감청, 계좌추적의 유혹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법 집행기관에서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지면 과연 누가 국민의 사생활을 보호하겠는가. 사생활 보호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는 영장 발부에 있어 무엇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될 것이다.

정부는 개혁 차원에서 인권법을 제정하였다.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운동때 어느 누구보다도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했으며 따라서 국민의 정부는 어느 정권보다도 도덕적으로 인권보호에 있어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말로만 국민의 정부 또는 인권정부라고 하지 말고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보호하여 명실공히 국민을 위하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불필요한 도청과 감청, 계좌추적을 없애기를 강력하게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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