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만능과 법치주의

다중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무엇인가 얻는다는 집단시위 문화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집단민원이나 분쟁해결에 있어 법적 절차를 중시하는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더욱이 택지개발과 공공사업 등 대규모 사업과 관련된 일부 민원인들이 표를 의식한 지자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을 압박, 집단시위를 민원해결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우려를 금치 못할 일이다.

지난 수년간 도내에서 벌어진 집단시위 건수를 보면 98년 862건에서 99년 1천812건, 2000년 2천569건, 올들어 7월까지 1천360건으로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경찰은 이중 70%이상이 개발사업과 관련된 집단민원 시위로 파악하고 있다. 물론 민주사회에선 누구나 그들의 주장을 개진하고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그것을 시위형태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경우에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시위는 혼자서 할 수도 있고 집단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주장과 의사 표시는 어디까지나 합법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각종 집단행동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합리성과 합법성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행동은 비민주적인 과격한 방법으로 나오고, 자신들의 권리는 크게 주장하면서도 상대방의 권리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짓밟는 일이 허다하다.

예컨대 아파트단지와 초등학교 사이에 6차선 대로가 개통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육교를 개설해야 하나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나, 또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신축을 이웃 주민들이 혐오시설이라며 반발해 짓지 못하고 있는 것 등은 막무가내식 집단이기주의에 따른 것이다.

집단행동의 고질화는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이 서있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느슨한 국가경영과 균형감각을 잃은 법집행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무엇이건 얻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수없이 진정·건의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행정기관들도 주민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거의 해결해주는 약점을 보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쩌면 행정기관이 ‘시위만능’풍조를 부추겼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이 사회의 갈등구조를 시정하고 억울한 사람은 누구나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목표달성은 다중의 힘에 의한것이 아니라 국가와 그 구성원의 이성적인 판단과 합법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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