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방한은 예상대로 기왕 예정된 일정을 마지못해 이행하는 모양새 가꾸기의 인상을 남겼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의전상 극진한 예우를 그가 갖췄을뿐 현안사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회피하였다. 초미의 관심사인 남쿠릴 꽁치잡이 어선의 조업배제 같은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하도록 바란다”는 지극히
원론적 입장표명에 그쳤다. 이밖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도 이런 수준에 머물러 딱부러진 현안사항 해결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한국인의 일본 입국비자 면제, 김포공항과 하네다 공항간 셔틀항공기 운항에 그의 긍정적 답변이 있었던 것은 일본이 손해볼게 없다는 판단에서 가능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관련,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참배했다는 것 역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라는 것도 새로운게 없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준데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말은 말만 앞세운 것으로 전에도 많이 들었던 얘기다.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일제의 잔혹상이 서린 옛 서대문형무소 독립공원을 방문하는등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언행은 짧은 방한기간중 시종 정중하긴 했다. 그러나 그가 막상 책임있는 언질을 남긴게 없는 것은 표리가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반일의 국민정서를 말로 무마하기 위해 적당히 다녀갔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21세기 동반자관계의 선린국 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된다. 호혜의 인식보다 우월의 잠재의식을 떨치지 못하는 선린관계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 외교 당국자간에 현안해결의 실무접촉을 갖는다 해도 이런 실정에서는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이 정부들어 유별나게 대일외교에 약하다. 그 이유가 만일 대북 햇볕정책에 일본의 지지를 계속 얻기 위해서라면 외교빈곤을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국익의 평준화를 도모하지 못하는 외교는 굴욕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사에 얽매여 매사에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 관한한 사사건건 뒷북치는 외교 또한 각성해야 할줄 안다. 정부는 대일외교에 좀더 역동적이고 앞서가는 비전을 지녀야 하는 사실을 고이즈미 방한 결과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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