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30일 새벽 0시35분이었다. 다이애나빈의 파리 교통사고 사망 보도가 미국의 CNN, ABC, NBC 등에서 숨가쁜 현장 중계로 이어졌다. 유독 CBS만이 한가하게 프로레슬링 경기를 중계했다. CBS는 다른 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내보낸지 한시간이 지나서야 사고중계에 가담했다. 보도의 판단착오였던 것이다. CBS 내부적으로는 제때 뉴스를 공급받지 못한 지방 가맹사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외부적으로는 위신이 크게 실추됐다. 헤이워드 CBS 사장은 ‘악몽의 한시간’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문책인사를 단행, 뉴스담당 베나르도스 부사장을 특집담당으로 좌천시키고 여성인 맥기니스 런던 지국장을 후임으로 승진발령 했다. 방송편성에서 중요한 것은 CBS 같은 낙종도 문제지만 역으로 과잉보도 역시 편성의 결함으로 지적된다.
미국의 아프간 보복전쟁을 두고 국내 방송의 과잉보도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있었던 가운데 기자협회보 10월13일자에 주목되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뉴스 속보를 중단한 이후에도 우리 방송에서 철야로 5∼8시간이상 보도를 내보낸 건 지나친 흥분’이라는 요지의 기사다. 공습 장면등에 자료화면과 그래픽을 남용한 것은 선정적인 편집이었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했다. 아프간 전쟁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론 크지만 전쟁 자체는 미국의 전쟁이지 우리의 전쟁은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의 전쟁인 것처럼 방송이 과잉보도한건 국내사회를 지나치게 과민케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것이다.
외신 인용도 그렇다. 외국의 각 외신은 그들 국익의 입장에서 기사가치를 배분한다. 그같은 외신을 마구잡이로 인용 보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국익의 실종을 가져온다. 미군 폭격으로 죽어가는 아프간 민간인은 “우리는 빈 라덴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왜 이 참상을 당해야 하느냐”고 절규한다. 그렇지만 그같은 절규보다는 미국의 작전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는 것이 미국의 외신이다. 보도는 진실추구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국적있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미국 국익에 치우친 국내방송의 아프간전 과잉보도를 보노라면 차라리 CBS의 다이애나빈 낙종처럼 낙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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