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명산과 설화가 어우러진 소요산역의정부역에서 출발하여 신탄리역까지 운행하는 경원선 통일호는 매시간 20분마다 있다. 소요산에 가기위해서는 서울종로 5가나 수유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나 자가용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적당히 여유를 즐기고 추억을 반추해보면서 가는데는 기차만한게 없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로 향하던 수학여행 기차가 그랬고 청년시절 빡빡머리를 하고 올라탔던 입영 열차가 그랬다. 그래서 기차에 관한 추억은 설레이는 마음과 서글픈 기억으로 갈라지는 것은 어쩌면 기성세대만이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소요산으로 등산가는 여행객들이 손에 쥐고 있는 두터운 마닐라지(Manila紙)로 된 기차표와 물건을 싣고 손수레를 밀면서 열차통로를 오가는 홍익회소속 판매원을 보고 있노라면 오래 전의 추억을 생각나게 한다. 기차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고 지난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경원선 통일호는 지하철과 기차의 좌석구조가 혼합된 셈이다. 기차는 역에 오면 멈추고 느닷없이 자동문이 벌컥 열린다. 기차객석의 좌석구조도 특이하다. 기차의 진행방향으로 앞부분과 뒷부분의 좌석은 승객이 차창을 등지고 앉아서 앞사람과 마주보는 구조이고 중간부분의 좌석은 차창을 옆에 끼고 앞사람과 마주보는 형태이다. 경원선 열차는 과거와 현재를 함께 싣고 가는 기차인 셈이다.
경원선에서 소요산역과 신망리역은 민간인이 직접 관리하는 역이다. 철도청이 건물과 기반시설및 하자를 보수하고 위탁 판매인은 승차권 판매와 주변 환경정리를 맡고 있다. 주내역과 한탕강역도 위탁발매역으로 지정하려 했으나 수입면에서 타산이 맞지 않아 위탁을 맡는 사람이 없어 현재 무인역으로 있다. 소요산역은 시발역인 의정부역에서 30분정도 걸리며 요금은 1100원이다. 이중에서 10%인 110원을 위탁인이 갖는다. 소요산역은 선상역이기에 화물은 취급하지 않고 소장 한분이 모든 여객업무만을 관장한다. 1일 상하행 각각 17회씩 운행되며, 승, 하차객은 평일 500여명, 주말 1ㅇ00명 정도이다. 의정부쪽으로 가는 새벽 6시40분열차로 하루가 시작되고 신탄리쪽으로 가는 밤 10시50분 열차를 마지막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1982년에 준공된 현 역사는 중앙에는 약간 높은 단층 8각형의 한식 정자모양 건물을 세우고 좌우 양쪽에는 회랑모양에 맛배 기와 지붕의 단층건물로 처리한 독특한 역사이다.
이상순(64세)소장은 2000년 1월부터 소요산역을 위탁맡아 운영하고 있으며, 부인 김재숙(58세)씨와 건양설비기술사 사무소에 근무하는 딸 이장희(29세)씨가 틈나는대로 도와주고 있다. 고향이 부산인 이소장은 미군부대를 정년 퇴임하고 건널목 안내원 생활을 1년정도 하는 동안 성실함이 인정되어 그 당시 관리역인 동안역의 이찬우 역장에 발탁되어 소요산역을 위탁맡게 되었다고 한다. ‘늙어서 일거리가 있다’는 데에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오늘도 열심히 부인은 표를 팔고, 남편은 개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부부 일심동체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소장은 승차권 위탁판매를 통해서 한달에 버는 100여만원 가운데 10여만원을 떼어서 소요산을 찾는 승객들에게 ‘사랑의
한방차’를 대접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즉 10월중순부터 이듬해 4월중순까지 영지, 계피, 생강, 대추, 칡 5가지를 소요산 약수물로 끓여서 평일에는 500잔, 주말에는 1000여 잔을 무료로 대접한다. 그리고 여름 한철에는 소요산 약수를 어름에 재여 대접한다.
소요산역은 경기도의 소금강산이라는 국민관광지 소요산(逍遙山;535m)의 관문에 생겨난 역으로 1976년 1월 11일 을종승차권 대매업소로 영업을 개시했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관광객과 등산객이 많이 찾는 역이다. 소요산은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고 그다지 높지도 않아 가족단위의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원효대사의 설화가 깃든 소요산은 자재암, 옥류폭포, 약수터, 청량폭포, 선녀탕,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참전기념비 등도 있어 불거리가 다양하다. 소요산은 수십종의 활엽수를 물들이는 가을산의 단풍이 장관이다.
‘서화담(서경덕), 양봉래(양사언), 매월당(김시습)이 한가롭게 노닐며 바람쐬기 위해 자주 소요하였다’하여 혹은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심산유곡인 이곳을 찾아와 소요암(자재암)을 세운데서 유래했다는 소요산은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다. 수행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하였다. 소요산은 한수 이북 최고의 명산으로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에는 녹음과 폭포, 가을에는 단풍이 유명해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컫는다. 소요산은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하여 큰 도를 깨친 곳이어서 불교 유적지와 각종 관광명소가 소재하고 있다. 또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수도권 지역의 1일 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요산은 산세가 그다지 장대하고 웅대하지는 않지만 형상미의 극치를 보는 듯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케 하고 심연의 계곡은 오묘한 정치를 발산한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소담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청량폭포가 있으며 폭포 위를 조금만 더 오르면 높이가 10m나 되는 원효폭포가 우렁찬 낙하의 절규를 토하며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주변에는 여름철마다 피서객들로 붐빈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신비롭다. 선녀탕일대에는 주 능선에서 뻗어내려온 암능이 톱니처럼 날카롭고 단애를 이룬 곳곳에 소나무가 있어 절경을 이룬다. 자재암의 일주문 안쪽과 주차장 뒤쪽으로 항시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물통을 한, 두 개쯤 준비해 가도 좋다. 동두천시가 직접 관리를 맡아 주변이 청결하고 질서가 잡혀있다.
처음 계곡을 따라 오르면 청량폭포가 보이는데 이곳이 하백운대이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사가 앉아 고행 수도하였다는 원효대가 있으며, 여기를 지나 다리를 몇 개 건너면 백운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원효대사가 원효대에 좌정하고 고행 수도하였으나 도를 얻지 못해 투신 자살 하려는 순간에 도를 통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소요산은 경기도 포천군의 종현산과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동두천시 동북쪽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매년 10월에는 소요문화제가 개최되는데, 이 기간중에 소요단풍 축제가 개최되어 수도권의 단풍객들이 행사기간중 10만명 이상 몰려온다.
갈비 자체가 시루떡처럼 생겨다해서 붙여진 동두천 떡갈비는 이곳의 특산먹거리로 유명하다. 갈비의 기름을 발라내고 다져서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어 석쇠에 구어낸 동두천 떡갈비는 모양과 맛이 별스러워 즐겨찾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소요산 입구에 80억을 투자하여 자유수호평화 박물관을 완성하고 개관을 준비중에 있다. 실내에는 UN군의 한국참전에 관한 주요전투 상황과 북한의 남침 및 남한의 반격 등에 관한 각종 전쟁 자료를, 야외에는 한국전쟁당시 사용한 대형무기들을 수집하여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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