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선 555리 철마는 달리고 싶다(15)

⑫ 구석기 유적의 메카에 세워진 전곡역

연천군에는 인구 2만의 전곡읍과 인구 8천 6백명의 연천읍이 있다. 전곡은 연천군의 군청소재지가 아니면서도 연천군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상업적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전곡이 서쪽으로는 임진강 건너 미산면, 백학면을 거쳐 파주로, 동쪽으로는 청산면을 거쳐 포천으로, 남쪽으로는 동두천을 거쳐 의정부, 서울로, 북쪽으로는 연천읍, 신서면을 거쳐서 철원, 평강쪽으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에 입지했기 때문이다. 또 전곡은 주변에 군부대가 많아 군인가족 및 민간인 APT단지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이 예상된다.

전곡(全谷)은 원래 양주군 영근면 전곡리지역으로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연천군에 편입되고, 1941년 10월 1일 행정구역 명칭변경에 의하여 전곡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지역의 땅이 몹시 질어 ‘진곡’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전곡이 되었다 한다.

1912년 7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올해로 99년이 되는 전곡역의 현 역사 건물은 1951년에 건설된 가역사를 헐고 1958년에 준공한 벽돌조 단층 기와집으로 어느 시골의 한적한 역사와 똑같다.

전곡은 실향민과 군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외지인 중심의 지방소비도시이다. 전곡역은 주중에는 의정부, 서울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주말에는 인근부대의 군인들을 면회오는 여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전곡역의 1일 승강차 여객은 5천여명 정도이다. 전곡역의 주요 반출화물은 철광석이다. 포천군 관인면 상율리 연천철광에서 생산하는 철광을 적게는 1일 12량 많게는 20량을 포항 제철소에 보내기 위해서 괴동역으로, 광량제철소에 보내기 위해서 태금역으로 보낸다. 또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서 묵호역으로 일평균 10량을 발송한다. 반입되는 하역물은 울산, 적량에서 들어오는 비료와 도담과 쌍용에서 들어오는 시멘트가 주요 물자이다. 전곡역은 경원선역중 의정부역을 제외하고 연간 수익이 가장 많고 이동승객과 화물이 많은 역이다. 특히 철광석의 반출이 많아 화물운송비를 가장 많이 벌어들인다.

전곡역 주변에는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자연 및 문화유적지가 많다. 전곡읍 양원리 지석묘와 전곡리 움터, 군남면 진상리 임진강 유원지 등을 비롯하여 마산면의 숭의전, 청산면의 한탄강랜드 등이 있다. 특히 움터는 전곡역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는 현무암의 단애로 그 위쪽은 화산분출로 생긴 용암이 유동하다가 냉각되어 생긴 현무암 대지를 형성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옛부터 이런 다공질 현무암 곰보돌로 만든 맷돌이 연천의 특산물로 된것도 화산분출시 나온 이런 용암 때문이다. 맷돌 제조산업은 현재 겨우 명맥만이 유지되고 있다. 또 임진강 유원지의 화이트교와 북삼교 주변은 견지 낚시꾼들의 명소로 민물다슬기가 잡히기에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곡은 최근에 구석기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유명해졌다. 1978년 4월 미군 글랙 보웬이 전곡읍 전곡4리 한탄강변에서 좀 낯설게 생긴 돌을 4개 주워서 서울대 박물관에 보낸 것이 시초가 되어 발굴이 이루어졌고, 이후 구석기 축제가 열린다. 구석기 축제는 조립식 간이전시관 옆의 공터에서 해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전후하여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전곡 구석기 유적지에서는 수천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주로 유럽 전기 구석기의 아슐리안 양면핵석기공작의 특징을 갖는 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 박편(剝片)도끼, 찍개, 다각면원구(多角面圓球) 등이 수습되었다. 아슐리안형 양면핵석기류는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 아시아에서는 소수 발견되었다. 이들 석기의 존재로 전곡리 유적지는 전기구석기 유적지로 추정된다. 최근의 지층에 대한 발열광 연대측정치는 이 유적의 퇴적이 약 4만5천년 전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곡역은 한상정(46세, 전남)역장을 중심으로 일근자 1인, 교대자 8인 총 9명이 5명씩 1조로 교대 근무하고 있다. 역광장에 국화꽃 화분만이 쓸쓸히 놓여있을뿐 움직이는 인걸이 없어 작은 간이역같은 느낌을 주지만 대합실에 들어가면 벽면에는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및 향토시인 이돈희의 ‘도감포의 봄’이란 시가 걸려 있어 제법 정겨운 느낌을 받는다. 도감포란 임진강과 한탕강이 합류하는 포구로 이지역의 명소이다.

가슴이 따수운 두강이 만나 서해로 갑니다./ 참 좋은 햇살을 만끽한 하얀 새 한 마리 모래톱에 외발로서 해시계를 만듭니다./ 강언덕 목장에 젖소들이 젖이 불어 어그적 거리며 봄날 오후를 반추합니다./ 후박나무 묘목에 북을 돋우는 다정한 노병 내외를 보고 노랑나비 한쌍 고개를 끄덕이고 날아갑니다./ 훈풍이 불어오니 등 굽은 어부의 작은 목선이 포구를 떠나고 싶어 칭얼 됩니다./ 저만큼 흘러간 강물이 나 이제 바다된다고 너울댑니다./ 갈대들 새순도 창을 엽니다.

개표구 앞에는 작두콩, 수세미, 표주박, 다래나무 등을 심어서 만든 둥근 아치가 세워져 있고, 옆에는 행사가 지난 구석기 축제를 알리는 바랜 현수막이 아직도 걸려있어 구석기 유적지의 메카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타는 곳의 의자는 전신통의 폐자재를 이용하여 둥근 원탁을 만들고 옆에 통나무 의자를 마련하여 전곡역 직원들의 높은 환경보존의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동네 꼬마 어린이들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개찰구 옆의 빈자리에 비니루를 깔고 벽돌을 쌓아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 소금쟁이 등을 잡아다 놓아 기르도록 만든 조그만 수족관도 전곡 역무원들의 지역주민을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고객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고개만 숙여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같이 대화하여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풍요로움을 고객들의 마음에 심어 주어야 한다’는 유호근 부역장의 말씀이 한 역무원의 불친절한 태도로 일순간에 어그러져 역사를 빠져 나오는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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