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지난 9월20일 소집된 올 정기국회 회기 90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 국정감사만 마친 가운데 54일을 넘겨 불과 36여일 남겨놓고 있다. 그동안 여야의 사정 때문에 상임위 활동도 별로 활성화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정치가 페리고르(1754∼1838)가 “아무 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고 개탄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1789년7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대부분의 귀족들은 해외로 망명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에 이은 루이 18세의 집권으로 갖은 고초를 겪던 망명 귀족들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땐 봉건제도의 모순이 극에 달해 시민사회의 이상이 확산하는 시대였다. 그런데도 귀족들은 봉건시대의 영화를 추구할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망명길에서 기아에 허덕였을 만큼 모진 고초를 겪고도 무능한 귀족들은 여전히 예전의 집단이익 근성을 버리지 못한채 싸우기만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페리고르의 유명한 말은 그 무렵의 왕정복고를

저주하며 귀족들을 갈파했던 말이다.

국내 정치권이 당쟁으로 영일이 없고,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심지어는 이듬해 정부예산안 확정도 법정시일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회기 막판에 가서 예산심의를 제대로 하는둥 마는둥 해가며 얼렁뚱땅 해치우곤 하였다. 건국이후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그동안 유일하게 한치의 발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정치권이다. 50년전이나 세상이 달라져도 몇번이나 달라진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개혁의 대상은 누구보다 정치권이라는 지탄속에서도 개혁의 면모는 커녕 예전의 타성 그대로다.

각 상임위 소관별로 쌓인 법안과 의안등이 산적해 있다. 민생과 관련한 많은 안건이 먼지가 쌓이도록 낮잠자고 있다. 이러고도 비서를 더 늘리거나 세비 인상 등에는 여야가 군말없이 의기투합하곤 한다. 일찍이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혹평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색이 선량이라는 그들은 말뿐 아무것도 깨닫지 않았고,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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