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어머니 사라 델러노 루스벨트는 부잣집 딸에, 극성스러웠다. 병든 아들의 면회를 기숙사에서 거절하자 사다리를 담벼락에 걸고 아들방까지 올라가 창문에서 동화를 읽어 주었다. 아들의 하버드대학 생활을 돕기 위해 아예 학교옆으로 이사를 했다. 미국판 ‘맹모(孟母)’였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어머니 넬 윌슨 레이건은 가난했다. 아들에게 줄 것이 없었지만 미혼시절 성(姓)인 ‘로널드’를 이름으로 붙여 주었다. 자녀들에게 예명을 지어주고, 본명 대신 부르기를 좋아했다. 어린 아들 레이건이 ‘뚱뚱한 네덜란드인(Dutch)’을 연상시킨다며 ‘더치(Dutch)라고 불렀다. 잦은 이사로 아들이 외톨이가 돼 갔으나 공개적으로 아들을 자주 격려했다.
“저 애 보세요. 쟤가 바로 내 아들 더치예요!”
마사 영 트루먼(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어머니)은 미주리주 두메산골 출신의 농부와 결혼했으며 시집살이를 했다. 아들에게 다섯살 때부터 굵은 활자로 된 성경 읽는 법과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쳤다. 남북전쟁의 폐해를 몸으로 겪었으며 어린 아들에게 실상을 세세하게 전해 주었다. 아들이 대통령이 된 후 “핵폭탄 제조는 잘못”이라고 공식 석상에서 밝혀 백악관 출입금지 처분을 당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어머니 레베카 제인스 존슨은 가난한 정치인의 아내였다. 아들이 열여섯 살 때 성공해 돌아오겠다며 가출을 선언하자 눈물 속에 떠나 보냈다. 아들이 2년동안 막일을 거친 뒤 실패해 돌아오자 아무런 질책없이 대학에 입학시켰다.
빌 클린턴 대통령 어머니 버지니아 클린턴 켈리는 나이트클럽에서 남자들과 자주 사귀었고 5번 결혼했다. 아들을 클럽에 데려가 재즈를 들려 주었으며 이후 아들은 색소폰을 배웠다. 낙천주의자로 의붓아버지가 아들을 때리면 맞서 싸웠다. 아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자주 하며 진지하게 토론하는 측면도 있었다. 아들에게 3가지 불가(不可)를 가르쳤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항복하지도 마라. 웃는걸 두려워하지 마라.”
한국에는 지금 대통령꿈에 도취해 있는 인사들이 많다. 용꿈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생애를 소개하였으면 좋겠다. 투표에 참고가 될 것 같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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