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극은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하고 시대극은 어떤 시대의 사건을 토대로 꾸며 만드는데 차이가 있다. SBS-TV 월화드라마 ‘여인천하’를 방송사측은 대하사극이라고 하나 그보다는 시대극에 가깝다. 물론 역사상의 실존 인물을 가공인물보다 더 비중있게 등장시키고는 있지만 구성에 픽션이 지나치게 많다. 재미있게 만들려다 보니 그렇다.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역사 및 역사관을 오도할 수가 있다. 당시의 조정이나 왕실이 밤낮으로 정적의 제거 음모에만 일관한 것처럼 꾸며 보이는 것은 역사를 비하하는 것으로 대단히 우려스런 현상이다.
제작상의 문제점도 많다. 우선 “뭐라?”하는 대사가 이사람 저사람마다 다 남발하여 언어(대사)적 인물묘사에 특색이 없다. 김안로의 이조참판은 지금의 행자부차관에 해당한다. 참판은 종이품이다. 판서인 정이품부터가 대감이다. 그런데도 영감 칭호에 해당하는 희락당(김안로의 호)을 두고 ‘희락당 대감…대감’하는 것은 난센스다. 김안로는 ‘정유삼흉’으로 사사될 당시 좌의정까지 승차했으나 참판이었을 땐 영감이다.
임금의 후궁인 빈의 품계는 비록 정일품이긴 하나 일개 후궁(경빈)에게 그야말로 대감반열의 중신들이 신칭을 해가며 굽실굽실 하는 것은 사실(史實)을 왜곡하는 허황한 과장이다. 판부사(判府事)는 판중추원부사(判中樞院府事)의 약칭으로 종일품 벼슬이다. 그 정실부인은 정경부인이다. 정경부인이 남편이 외간 남자를 손님으로 맞는 사랑채에 나가 좌석을 함께 하는 것은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술 더떠 남자들 얘기에 끼어들고 차를 따르는 것은 해괴한 연출이다. 청국의 거상 등장 그리고 이따금씩 칼부림을 보이는 것은 시청자의 눈요기감이겠으나 허구설정에 비약이 너무 심해 오히려 유치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텔레비전방송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괴력적이다. 하다못해 광고방송의 멘트마저 아이들이 따라 하기가 일쑤다. 하물며 역사물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아무리 시청률 경쟁을 의식한다 해도 그렇지 작품에 책임감을 갖는다면 그토록 황당하게 만들 수는 없다. 시청자는 만들어 보여주는대로 보기 마련이라는 오만을 방송사는 이제 버려야 한다. 드라마 ‘여인천하’는 정통사극이 아니고 시대극 오락물이다.
/白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