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얘기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性澈)스님이 수년전 가야산 백련암에서 입적했을 때 수십만 신도들이 해인사를 찾아 운집했다. 성철스님이 생전에 자주 썼던 말이 있다. “밥도둑놈”이란 말이다. 수행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는 스님이 눈에 띄면 “이 밥도둑놈아!”라고 일갈하곤 해 절집 사이에서는 그를 두려워 할만큼 소문이 났었다.

‘월급도둑’이란 말이 있다. 직장에서 별 하는일 없이 월급만 꼬박꼬박 타먹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다. 연봉이 8억4천만원이 되는 은행장이 있어 신문에 난 적이 있다. 은행에서는 처음에 14억원을 책정했다가 금감원의 재고 요청으로 최종 확정된 게 8억4천만원 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대부분의 은행장들 연봉이 3억원인데 비해 비교가 안되게 높은 월급이다. 연봉 3억원도 서민들은 입이 딱 벌어질 판에 8억4천만원이면 하루에 230만여원을 버는 셈이다.

이처럼 고액연봉을 받는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9·11 뉴욕테러사건 직후 주식시장이 곤두박질 칠 때 5천억원어치 사들인 모모주식이 6천200억원으로 불어나 은행에 1천200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가 주식매입을 결정할 때 주위의 우려속에 만류가 있었으나 소신을 갖고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과감한 투자는 바닥을 헤맨 주식시장을 살리면서 불과 두달 남짓동안에 자신의 연간 월급보다 143배나 더 많은 돈을 은행에 벌어준 것이다. 결국 은행의 입장에서는 연봉 8억4천만원은 많긴해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지출이 되는 것이다.

월급이란 자기가 맡은 일을 통해 직장에 기여한 가치의 일부를 타가는 돈이다. 직장 구성원이 맡은바 각자의 역할을 창의적으로 못해내면 수입이 있을 수 없다. 수입이 많은데도 쥐꼬리 월급을 주는 사용자도 큰 문제이지만 날짜만 채우면 월급이 절로 나오는 것으로 알고 일은 쥐꼬리만큼 하는 근로자도 큰 문제다. 월급이야 직장에서 당연히 줄 의무가 있는 것이지만 ‘월급도둑’이란 말을 들어서는 곤란하다. ‘밥도둑’이란 말과 같은 이치다. “뭘 얼마나 더 기여하고 덜 했는가를 생각해 가며 월급봉투의 두께를 재보아라” 고인이 된 정주영씨가 월급을 봉투로 지급할 때 남긴 말이다. 월급도둑은 민간기업보다 공기업, 공무원 사회에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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