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2001년을 보내며

묵은 해 보내는 소회를 송구영신 이라고 한다. 2001년 신사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나 영 개운치 않다. 지난해의 묵은 것을 훨훨 털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못하다. 올해 뭣하나 깨끗이 마무리된 게 없다. 2001년의 갖가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2002년을 맞이한다. 신사년은 가지만 여전히 떠안은 지난해의 과제는 임오년 새해에도 ‘판도라의 상자’뚜껑을 여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남북관계는 ‘답방애원’끝에 서울 방문회담마저 거부당한 채 교착상태에 빠졌으며, 정치 경제 사회의 각분야 또한 모두 불확실성 속에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국민 대다수는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도 국민생활의 실질이 향상됐다고는 볼 수 없다. 살기가 나아진 것은 소수의 특수층 뿐이다. 지역간 갈등에 겹쳐 계층간 위화만 더욱 깊어졌다. 삶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온 지난 한 해가 무척 허망하게 여겨지는 게 서민 대중의 사회정서다. 당장 뭔가가 잘 되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그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문제는 지금은 어려워도 희망조차 갖기 어려운 데 있다. 정치개혁은 실종된 가운데 경제는 행방이 묘연한 공적자금 부담만 가중하고 교육 및 사회복지 시책은 시책마다 상충, 괴리, 누수로 인해 마냥 겉돌고 있다. 사회기풍은 상식보다 변칙이 앞서고 정직한 사람은 멍청이 취급당하는 심각한 병리현상이 심화해졌다.

이의 총체적 원인은 지도층의 도덕성 결핍에 있다. 정현준게이트, 이용호게이트, 진승현게이트, 윤태식게이트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게이트마다 이 정권의 몸통 실세의혹이 거론되는 그들부터의 한탕주의가 마침내 국민사회의 병리를 골수에 파급시켰다. 억대 뇌물이 다반사인 가운데 수백, 수천억원 규모의 이 모든 의혹사건 또한 올 한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면서 무엇하나 명쾌하게 수술해내지 못한 채 이를 업고 새해로 넘어간다. 많은 국민들은 피탈감과 무력감에 젖은 심리적 공동속으로 함몰해 있다. 청와대서 뭐라 하여도 아뭇 소리도 신뢰할 수 없을 지경의 불행한 국민이 됐다. IMF 때 금을 내놓으라서 금을 내놨던 국민이다. 유순한 국민을 왜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위정자들은 올 한해를 보내면서 냉엄한 반성을 해야 한다. 국내·외적으로 정말 수치스런 한 해였다. 역사는 우연이 없는 필연적 연속이다. 다사다난 했다고 하기보다 더 한 간곤과 미몽을 기억조차 하기 싫으면서 그래도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은 내일의 역사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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