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복금지법’의 허구성

법률의 취지가 좋다 하여 반드시 실효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법률은 있으나 마나 하거나 되레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정치보복금지법’제정이 이에 속한다. 정치보복의 금지를 반대할 사람은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로 규제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우선 정치보복의 법률적 개념

정립부터가 간단치 않다.

예컨대 정치인의 과거 비리에 대한 단죄를 보복으로 간주한다면 비리를 옹호하는 것이 된다. 다른 실정법 위반 역시 마찬가지다. 시안은 사법적 사안뿐만이 아니고 세무조사, 공정거래조사 등 행정기관의 조사 또는 감사까지 정치보복 금지의 대상으로 삼고 있어 보복의 개념 정립이 더욱 난해하다. 시안 자체도 이를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치보복의 여부를 결정하는 대법관, 헌재재판관, 국가인권위원, 변호사 등을 각 2명으로 하는 ‘정치보복금지위원회’의 구성을 두고 있으나 판단에 객관적 기준이 없어 모호하기는 매한가지다. 또 ‘정치보복금지위원회’의 수사중단 등 권고는 기소독점주의 침해로 형사소송 절차를 문란케 한다.

만약 이 법 시안의 배경이 정치인의 포괄적 비리에 유독 특정인만의 표적수사를 정치보복으로 보아 금지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이같은 표적수사는 이 정권에서 적잖게 있었지만 지금의 야당이 집권했을 적에도 항용 수법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간의 사회정서 또한 표적수사엔 거부감을 가지면서 단죄엔 긍정적이었던 것은 정치인의 비리는 어떻든 일벌백계로 추방돼야 한다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뇌물 비리뿐만이 아니다. 정권장악을 위한 전두환, 노태우 소장등 신군부의 국가변란 행위를 그들이 대통령을 지내고 나서도 단죄하였다.

야당의 시안은 결국 정치인 비리나 신군부 같은 변란행위에 대한 처벌도 보복금지라는 이름으로 덮어두자는 것밖에 안되는 심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굳이 위헌소지까지 짙은 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를 모르지 않을 한나라당이 시안을 마련한 것은 꼭 입법화하겠다는 것 보다는 보복금지의 이미지 홍보를 노리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된다. 또 여당이 반대하면 마치 정치보복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략적 의도 또한 깔려 있어 보인다. 참다운 정치보복 금지는 법률적 판단이 아닌 건전한 인식의 판단에 속하는 일이다. 공연히 소모적 논란만 불러일으킬 ‘정치보복금지법’의 제정 추진은 당장 철회하는게 마땅하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