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인천하’의 경우

역사드라마에서 궁중이나 조정의 암투만을 집중조명한 폐해가 작금에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하나 요즘 방영되고 있는 SBS-TV ‘여인천하’는 일부 시청자의 역사관을 오도할 우려가 있을 만큼 정도가 지나치다. 잇단 게이트 의혹사건의 뇌물리스트를 빗댄 ‘치부책’등 픽션삽입의 오락화, ‘찍어낸다’ 등 감각적 대사 남용 등으로 오락물의 맛을 한껏 돋구는 것은 그런대로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연일 밤낮으로 이마를 맞댔다 하면 음모로 일관하는 살벌한 스토리 전개는 역사관을 그릇치기 십상이다.

이 드라마는 중종재위 38년, 인종재위 8개월, 명종 재위기간의 문정왕후 수렴청정 8년 등 근 50년을 대상으로 구성된다. 장구한 세월을 드라마로 압축하려다 보니 구성요소가 되는 권력암투를 부각시키는 것을 이해하는데 인색하고 싶지 않으나 역사적 사실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드라마에서 치른 ‘기묘사화’를 비롯한 ‘신사무옥’등 옥사 이외에도 심정등 ‘신묘삼간’, 경빈의 ‘동궁저주 작서의 변’, 김안로등 ‘정유삼흉’, 윤임 일족을 사사한 ‘을사사화’등을 앞두고 있으나 위국제민의 정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중종은 유교주의적 윤리정책을 정착시킨 군주로 평가된다. 향약을 전국화 하고 주자도감 등을 두어 ‘이륜행실’‘속삼강행실’등을 출간했으며, 천문 지리 및 농업관련의 과학기술 책자를 많이 간행 보급한 것은 특이한 치적으로 손꼽힌다. 경제적으로는 저화를 활성화 하고 도량형을 일원화한 것 외에도 민생유통에 적잖은 배려를 했다. 국방 또한 각별히 힘썼다. 내륙까지 침입이 잦아 행패가 극심한 왜구를 토벌, 일본과의 왕래를 단절하자 아카시마막부의 간청으로 제한적 내왕을 허용하고 육진순변사를 두는 한편 의주산성을 수축하는 등 남왜북로의 시달림에 적극 대처하기도 했다.

조정 역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간신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예컨대 지치주의를 표방하면서 급진이 아닌 단계적 개혁을 강조한 김안국 같은 명현을 중용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조선조 역사를 중종시대 같은 권력싸움, 중종 이후의 선조시대부터는 당파싸움으로 일관한 것처럼 왜곡한 것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다. 일제는 식민지의 역사를 비하하기 위해 ‘만선연구소’ 같은 것을 두어 조선조의 사색당쟁을 하릴없는 감투싸움으로 깎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세자책봉 등에 죽음을 각오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은 당쟁은 이합집산이 무상한 현대 정당이 오히려 배워야 할 점이다. 지금의 민주치하 정당이 본받을 점이 있는 군주치하의 사색당은 정당정치의 효시로 재조명할만 하다.

아무튼 드라마 ‘여인천하’가 시청률 경쟁을 의식, 엿가락 처럼 늘려가며 지나친 흥미위주로 흐르는 것은 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해 경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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