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배우지 못하여 무지하면 대개 억지를 쓴다. 분별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지 못했다 해서 다 그러는 것은 아니다. 비록 배우진 못했어도 사리판단이 밝은 이들도 많다. 반대로 배운 사람이라 하여 반드시 경우가 바른 것 만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올바른 처신은 배우고 안 배운 것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별력이 있으면서 사리를 왜곡하는 배운 이들의 횡포는 배우지 못해 몰라서 억지를 쓰는 것 보다 더 무섭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몰라서 떼를 쓰는 배우지 못한 이들보다, 배운 지식을 밑천삼아 나쁜 짓을 저지르는 몹쓸 유식인들 때문에 더욱 더 각박해진다. 정상배들이 그렇고, 어용교수들이 그렇고, 악덕기업인이 그러하며, 부패관료들이 그렇고, 곡필언론인 등이 그러하다.
영국의 제임스1세는 스튜어트 왕조를 창시한 아주 유식한 왕이다. 많이 배우고 책을 많이 읽어 박식하여 그 스스로 논문을 자주 썼다. 왕권신수설은 그가 주창한 것으로 국가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국왕뿐이며, 국민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국왕의 절대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앞세워 의회의 승인이 없는 과세를 일삼아 의회와 충돌이 잦았고 국교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신·구 두 교도들의 신망을 잃어 1605년엔 구교도에 의한 화약음모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하여 왕을 비판한 의회는 제임스1세를 가리켜 “유식하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책속에서만 얻은 잘못된 탁상 공론이나 지식을 왜곡한 이론은 경험축적으로 단련된 바른 지혜보다 더 못하여 유식이 곧 현자가 아님을 설파한 것이다.
아테네의 소피스트, 이른바 궤변학파가 있었는가 하면 진시황의 갱유분서(坑儒焚書)가 있었다. 시황제의 지식인 탄압은 국정의 비판을 금지키 위한 것이니, 일종의 중국판 소피스트적 명분이었으며 그 역시 지식인 이었으니 식자우환의 폭거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르는 것을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세상이 해가 갈수록 두려워 지는 것은 알량한 지식인들의 횡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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