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쌀이 남아 돌아간다기로소니 어떻게 벼를 썩히는가. 정부의 농정이 생각할수록 한심스럽다. 아니 공분을 금치 못하겠다. 그것도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사일로 저장능력 부족이 주원인이라고 하니 그동안 농업당국은 무엇을 했는지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본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도내 29개의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의 사일로 저장능력은 5만5천∼6만t인데 반해 올해 산물벼 수매량은 정부수매량과 자체 수매량을 합쳐 16만t에 이른다. 사일로 저장능력이 이렇게 크게 부족한 형편이니 수매한 벼는 별 도리없이 옥외에 쌓아 놓고 보관하는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러나 옥외에 아무리 잘 보관한다 하여도 강추위나 눈·비가 오면 비닐 등이 손상돼 벼가 젖어 미질이 나빠지거나 썩을 것은 뻔하다.
특히 양곡사업 비중이 높은 안성·평택·화성 등 12개 시·군의 경우, 평균 벼 수매량이 5천∼6천t에 이르고 있는데도 사일로와 창고 부족으로 2천∼3천t을 2월∼3월말까지 옥외에 쌓아둔채 보관해야 한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이슬이 맺히거나 물건의 표면에 작은 물방울이 서려 붙는 결로(結露)현상이 생겨 이를 방지하려면 사일로를 정기적으로 가동해야 하는데도 대부분의 RPC들이 운영비 부족으로 가동치 못한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안성 금광농협의 경우만 해도 산물벼 20t 중 절반이 넘는 10여t이 결로 현상으로 썩어 이미 1천500여만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피해가 더욱 엄청날 것이다.
사람이 먹을 귀중한 벼를 사료 등으로 쓴다고 하니 한마디로 헛농사를 지은 것이다.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봄부터 가을까지 노심초사하며 피땀 흘려 고생한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보관장소가 없어 벼를 썩히게 하는 당국의 처사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옥외에 방치되다시피 쌓여 있는 벼가 결로 현상 등으로 썩어가는 상태를 지켜보는 농민들은 마치 자신의 살이 썩는 듯해 가슴이 아플 것이다.
재삼 강조하거니와 흙이 살아야 농업이 살듯, 농업이 살아야 국가가 살아나갈 수 있다. 첨단과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사람은 곡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근래 정부마저도 농업을 경시하는 듯한 사례를 보이는 것은 ‘농자천하지대본’을 망각한 일이다. 양곡보관창고 확충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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