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야당 총재

제왕적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 겸직에서 비롯됐음을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 사퇴이후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는 임기말의 레임덕으로 보기 보다는 총재 사퇴로 인한 전향적 변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민주당의 잇단 당권, 대권 분리등 제반 분야의 정당 개혁조치는 정치권의 긍정적 반응을 불러 일으켜 한나라당 안에서도 정당 개혁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연두기자회견은 이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어 국민의 실망이 크다. 그가 언급한 다른 원론적 내용은 평소 늘 주장했던 터라 새삼 더 논평할 필요는 없다. 또 국민경선제 반대는 이유로 든 과열혼탁의 우려가 전혀 없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총재직을 분리 한다면서 집권을 조건적 시기로 못박은 것은 자가당착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총재직을 내놓겠다고 했다. 언어의 유희로 끝날 공산이 높다. 만약 대통령이 되어도 그 때 가서는 아직 시기가 아니라며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낙선하면 야당 총재라도 계속해서 움켜쥐어야 겠다는 것으로 보이는 건 대선에 한 몸을 던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직 분리는 당·정의 민주화 추구다. 겉으로는 이의 분리를 말하면서 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반대하는 것도 모순이다. 결국 구시대적 1인 치하의 총재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다분히 권위주의 소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총재를 가리켜 ‘제왕적 총재’라는 비판은 비단 당내 비주류의 소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사회정서 가운데도 그렇게 보는 시각이 적잖다. 당을 그런 방식으로 운영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강력한 독단력을 강력한 지도력으로 착각해서는 정당개혁은 요원하다. 정당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3김시대의 청산은 보스 중심의 정당을 탈피하는데서 시작된다. 3김청산을 주창하는 사람이 그들의 유물인 보스취향을 선호하는 것은 그 역시 구시대적 인물이다. 기자회견 자리에 젊은 당원을 배치하고 자리를 원형으로 만드는 깜짝쇼로 신선한 이미지를 얻는게 아니다. 생각이 신선해야 한다. 당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건곤일척의 자세로 한 몸을 던지는 것이 참다운 야당 지도자의 길이라고

믿었다. 이에 부응하지 못한 연두기자회견은 오히려 그도 역시 ‘제왕적 총재’라는 인상을 털어내지 못하여 유감이다. 왜냐하면 ‘제왕적 총재’는 ‘제왕적 대통령’임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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