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9일 단행한 개각과 청와대 개편은 한마디로 실망 그대로다. 이한동 국무총리의 유임과 박지원 정책특보의 재기용을 보면서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한동 총리 체제로는 9명의 장관 경질에도 불구하고 국정쇄신의 분위기조차 느낄 수 없으며, 박지원 정책특보의
재기용은 과거 정치쟁점의 중심에 있었던 측근 인사여서 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대결정치로 치달을 우려가 짙어졌다.
대통령 자신도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터지는 각종 의혹사건들로 국정이 최대 위기에 몰려있고 민심이반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다수 국민들은 이번 개각이 도덕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장관들로 채우는 조각차원의 혁신적 개편이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으로는 그러한 기대가 깨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한동 총리는 지난해 9월 DJP 결별 때 자민련 총재이던 그가 내각에 잔류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정치도의적인 비난을 받아온 터였다.
그런 이 총리를 바꿀 경우 사실상의 야대(野大)국회 상황에서 후임 총리가 자칫 인준 받지못할 것을 우려해서 유임시킨 것이라거나, 박 정책특보 재기용은 대통령이 민주당 총재직 사퇴와 함께 정치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소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오히려 청와대의 인적자원 빈곤과 대통령의 인재 발굴의 한계성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오늘의 난국에서 무엇이 더욱 중요한지를 모르거나 국민이 무엇을 더 원하는지를 외면하는 ‘오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번 개각에서 양대 선거를 앞두고 내각의 중립성 측면에서 민주당 출신 장관들을 경질한 것이 당연시 되면서도 새 내각에서 참신성과 쇄신의 이미지를 찾기 어려운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특히 박 정책특보의 재기용에 대해서는 민주당내 소장의원은 물론 중진의원들도 반발이 거세다. 그동안 줄기차게 제기해 온 인적 쇄신 요구와는 정반대로 친정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데 대한 이유 있는 반발이다. 한나라당도 ‘오기의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래가지고는 각종 게이트로 허망해진 국민의 절망감을 어루만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소야대 정국이 제대로 돌아갈리도 없다.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이번 개각을 권력핵심으로 향하는 이형택 게이트 등 의혹의 파장을 덮으려는 국면전환용으로 쓰려했다면 큰 오산이다. 최대 위기를 맞고서도 과거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대통령이 앞으로 남은 1년간 국정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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