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가이며 혁신적인 정치가였던 아돌프 체루(1797∼1877년)의 어록 가운데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는 않는다’는 말이 있다.
1830년에 자기 손으로 창간한 기관지 ‘내셔널’의 2월4일 호에 체루는 국왕은 왕국의 최고 관리가 아니며, 대신을 임명하는 권리는 국회가 갖고 대신은 국왕 마음대로 뽑을 수 없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국왕은 지배하지 않으며, 통치하지 않으며, 군림할 뿐이다. 대신은 지배하고 통치한다. 대신은 자기에게 반대하는 한 사람의 부하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국왕은 자기와 의사가 다른 대신을 가질 수 있다. 국왕은 지배하지 않으며, 통치하지 않으며, 군림할 뿐이다”
국왕의 전통적인 전제주권을 거세하려고 한 체루의 주장은 당연히 왕당파나 보수파 정치가들의 맹렬한 반박과 반대를 받았다. “국왕을 하나의 기계로 만들자는 것인데, 국왕도 인격있는 존재임을 잊고 있다”는 반박의견도 있었다. 당시의 검찰총장도 체루의 말을 ‘국왕을 무력화 하려는 음모’라고 반격했다.
전제군주 정치는 결국 자유주의의 물결에 쓸려 아돌프 체루의 말대로 왕권은 거세되고 말았는데‘왕은 군림하지만 통치는 않는다’는 말의 원류는 1605년 폴란드 왕 지그리스 문트가 국회에서 한 ‘왕권을 상징화 하자’는 말이다. 이 말을 체루가 당시 프랑스 실정에 맞게 인용한 것이다.
작금의 우리 정치사를 생각해 보면 아돌프 체루의 ‘왕은 군림하지만 통치는 않는다’는 말이 수시로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대통령’앞에 ‘제왕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이 ‘제왕’같기도 해서다. ‘대신은 자기에게 반대하는 한 사람의 부하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국왕은 자기와 의사가 다른 대신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곱씹을수록 그럴듯한 소리다. 제왕적 대통령에 제왕적 총재, 제왕적 부총재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왕권시대가 아니다. 제왕이라 하더라도 그 누구를 지배하려 든다면 종말이 비참해진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淸河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