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이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 왕 앞에서 서로 우겼다. 그럼 아이의 몸을 나눠 가지라고 했다. 그러자 한 여인이 어머니임을 포기했다. 왕은 아이가 죽게 되기보다는 남의 아이가 될지라도 살기를 바라는 것이 모정이라며 어머니가 되기를 포기한 여인에게 승소판결을 내렸다. 솔로몬 왕의 얘기다. 고대 헤브라이 다윗왕의 아들로 왕국의 전성을 이룩했다. 예지가 출중하여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재판은 이처럼 잘 된 재판만이 있는 건 아니다. 종교재판은 중세기에 들면서 타락했다. 특히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는 마녀재판은 18세기 계몽사상의 대두로 폐지될 때까지 무려 10만여명의 희생자를 냈다. 잘못된 재판의 횡포는 중세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1975년 영국에서도 있었다. 런던의 한 식당에서 터진 폭발물 사건을 근처에 있었던 아일랜드인 일가족의 테러로 몰아 이들은 억울한 15년의 옥살이 끝에 간신히 누명을 벗었다. 1994년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짐 쉐리던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영화가 이 잘못된 재판의 실화를 다룬 것이다.
미국 미시간주 어느 순회법원의 브라운 판사는 동전을 던져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2월14일에 있었던 일이다. 부모가 이혼한 아이들이 양육을 맡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게 좋은지, 아버지와 함께 하루라도 보내는 게 좋은지를 결정해 달라는 아이 아버지의 신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다 못해 동전 던지기로 아이 아버지에게 보냈던 게 나중에 이를 안 조부모가 ‘중대한 가정사를 동전 던지기로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판사를 걸어 소송을 제기했다.
그저 웃어 넘길 수만은 없는 게 이처럼 난해한 일이 종종 재판실무에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증의 법칙, 경험의 법칙, 판단의 비중 등 이밖의 객관적 여러 사실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판사의 자유심증주의다.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가진 215명의 신임판사 임명식에서 이들이 엄숙히 선서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보도된 것을 보았다. 자유심증주의엔 판사의 인격 및 교양 그리고 인생관 등이 크게 작용한다. 법률은 이런 것들을 담는 외형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심증주의는 바로 양심과 양식의 그릇이란 사실을 신임 판사들은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 양심은 선천적 인성이며 양식은 후천적 인성으로 무한한 개발이 다같이 요구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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