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의 하나인‘ 아리랑’이 나온 배경은 세가지 이야기가 유력하다. 첫째는 조선시대 밀양의 한 사또의 딸 이름이 ‘아랑’인데 중추원 소속 관리의 횡포에 항거하다 죽임을 당하자 주변 사람들이 애도하느라 ‘아랑 아랑’하던 것이 아리랑으로 변천됐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으로 우물로 내려온 용에게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알영’왕비를 추모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물 이름이 알영정이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 또한 알영으로 지어 왕비를 삼았는데 백성들이 나중에 ‘알영 알영’하며 추모한 것이 노래로 전해졌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건축에 얽힌 전설이 두가지 전해온다. 하나는 경복궁을 지을 때 막대한 돈을 내라고 재촉하자 백성들이 “차라리 내 귀를 어둡게 해달라(我籬聾)”는 의미로 ‘아이롱 아이롱’노래 불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부역에 끌려온 남자 인부들이 집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며 “내 낭자(부인·娘)와 헤어졌구려(我離娘)”라고 노래 불렀다는 설이다. 그러나 북한은 “내 사랑하는 낭군(남편·郞)과 헤어지는구려”라는 의미의 한문인 아리랑(我離郞)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시대 중엽 김좌수라는 지주가 착취를 일삼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김좌수의 남자 머슴 ‘리랑’과 리랑의 연인 여자종 ‘성부’도 반란에 동참한다. 관에서 반란을 진압한 후 농민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리랑과 성부는 산으로 도망간다. 숨어지내던 리랑은 마을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다시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다. 이때 성부가 남편과의 이별이 서글퍼 ‘아리랑 아리랑’하며 즉흥적으로 노래 불렀다는 것이다. 남편 리랑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렇게 아리랑 전설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남북한 모두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만 북한은 하부계층이 억압에 맞서 투쟁한다는 혁명의식 고취 목적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4월29일부터 6월26일까지 전세계인을 상대로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규모 집단체조 ‘아리랑’을 공연한다고 한다. 기승전결형을 취하고 무용·노래·집단체조·영상·서커스 등 다양한 장르에서 10만명에 달하는 연희자들이 등장한다. 남한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 축제분위기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행이다.
淸河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