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일컬어 염치(廉恥)라고 한다. 부끄러움을 수치(羞恥) 또는 수괴(羞愧)라고도 한다. 얌통머리, 얌치, 얌체란 말도 있다. 역시 같은 어의이다.

중국 송나라에 왕광원이라는 출세주의자가 있었다. 권력자에게 아부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났다. 예를들면 시회같은 데서 높은 사람의 시는 덮어놓고 이태백과 버금가는 명시라며 알랑대기가 일쑤였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보다 못해 채찍으로 매질을 했으나 그래도 개의치 않고 아부를 일삼았으므로 ‘열겹의 철갑을 씌운 것 만큼 얼굴이 두껍다’(顔厚如十重鐵甲)며 개탄하고 말았다. 중국의 고서 북몽쇄언(北夢鎖言)에 전한다.

전래 속담에 ‘족제비도 낯가죽이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빈대도 콧등이 있다’는 말이 있다. 염치를 일깨우는 잠언인 것이다. 염치를 인간다움의 근본으로 삼은 옛 사람들은 무엇보다 파렴치한 것을 가장 부끄럽게 알았던 것이다. 물론 인간은 그 누구도 부끄럼 없이 살 수는 없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일지라도 염치를 다 차리고 산다 하기는 어렵다. 역시 생활하는데 이해관계란 게 있고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하물며 범부들은 더 말할 것 없다. 범사에 실수투성이인 게 세인의 인간사다.

문제는 염치를 차릴 줄 알아야 하는 데 있다. 수치스런 일을 저지르고도 수치를 몰라서는 인간다움이라 할 수 없다. 비록 염치를 차린다 해도 잘못을 또 되풀이 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지만 그래도 염치는 알아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제 몰염치는 뒷전에 놔두고 남의 몰염치만 탓하는 습벽이다. 이런 위인일수록 자신의 큰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사소한 잘못은 용서할 줄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일이 범부의 범사에서는 나라나 사회에 나쁜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게 별로 없다.

그러나 권력을 쥔 이들의 몰염치는 나라나 사회에 미치는 그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권력자의 몰염치는 또 아첨배들을 불러들인다. 왕광원 같은 파렴치한 아첨배는 아첨을 좋아하는 그같은 권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유유상종(類類相從)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난세다. 이 시대에도 송대와 같은 몰염치한 권력자와 파렴치한 아첨배들이 들끓는 것 같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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