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성남의 지하 민속주점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는 대형 참변 때마다 지적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함께 일그러진 청소년문화를 생각케 한다. 다행히 불이 주점 안쪽에서 발생, 손님들이 출입구로 쉽게 대피하는 바람에 11명만 화상을 입는 데 그쳤지, 그렇지 않았으면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였다.
지하 주점 내부가 바싹 마른 대나무 형태의 인조화분 등으로 장식됐고 천장까지 갈대로 치장하는 등 온통 인화성 물질로 가득찬 것도 문제가 크지만, 화재 당시 지하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20여명의 손님 모두가 남녀 고교생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2개 고교 학생들이 각각 3개팀으로 나뉘어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이 난 주점뿐만 아니라 대학촌을 형성한 이 일대가 10대 청소년을 주 고객으로 하는 노래방, 게임방, 콜라텍, 소주방 등이 몰려 있어 평소에도 학생들로 북적거렸다는 점이다. 약간의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가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누구도 주민등록증을 확인하지도 않고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나무라지 않는 그야말로 청소년들에게는 ‘치외법권지역’인 셈이다.
이런 지역이 전국 대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모른 채 덮어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지난 1998년 19세 미만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하고 미성년자 출입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등 청소년 보호법이 정비·강화됐기는 했다.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 이후엔 청소년의 술집출입에 대한 경각심도 한층 높았었다. 그러나 이번 화재사고는 이 법이 얼마나 엉터리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또 드러내 주었다.
특히 이번 불난 주점은 올 1월19일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팔다 적발된 전례가 있다. 그런데도 계속 고교생들에게 술을 팔았으니 그 배짱이 가증스럽다. 단속기관 및 행정기관도 문제가 없지 않다. 경찰은 1월19일 단속한 적발내용을 12일이나 지난 1월31일에 구청에 통보했고, 구청은 그로부터 두 달뒤인 지난 3월18일 업주에게 영업정지(4월8일∼6월7일)를 통보했다. 화재발생(16일) 이틀 뒤에나 통보됐으니 뒷북 조치였다. 그 사이에 또 고교생에게 술을 팔다 사고가 난 것이다. 관계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법이 어떻게 준수되어야 하고 행정조치를 더 신속하게 할 수 없는지를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또 잘못된 청소년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이들의 변화된 가치관을 이해하고 중고생들이 젊음을 발산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출구를 마련해 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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