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여성개발원이 최근 전국 15개 시·도 성인남녀 3천107명 및 여성정책 관련 전문가 2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것에 대한 일반인의 찬성률이 남성 60.6%, 여성 78.2%로 나타났다. 노인부양에 대해서는 남성 39.4%, 여성 21.8%만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고 답했다.
노인부양의 문제는 의학 및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의 연장이 가져온 축복인 동시에 화근(?)이다.
노인문제 중 가장 큰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 대부분의 노인이 노인전기인 60∼74세 때는 젊어서 모은 재산이나 자식들에 의지해 어느 정도 꾸려갈 수 있지만 의료비 등 생활비가 급증하는 75세 이후(노인후기)에는 자식들도 ‘그동안 할만큼 했다’는 핑계로 외면하기 십상이다.
나이가 많아 갈 곳이 없는 노인들도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노후문제는 제쳐둔 채 오로지 자식의 성공만을 위해 뼈빠지게 일해왔다. 그러나 지금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허탈감 뿐.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식도 떠나고 건강까지 잃어버렸다. ‘이럴줄 알았다면 자식농사를 위해 모든 재산을 털어넣지 않고 저축이라도 할 것’하고 후회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경기도 여성정책국 노인복지담당 노완호 사무관은 “가족의 노인부양 기능 약화는 심각한 국가적 현안”이라며 “노인정책은 일부 저소득 노인에 대한 생계지원 차원을 벗어나 이제 전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전예방적인 정책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사무관은 또 “아름다운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젊은 시절부터 노후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미래까지 걱정하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30·40대부터 재정과 건강, 취미생활 등 노년준비를 꼼꼼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늙게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노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밝은 노후모임 서혜경 대표는 “노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을 하면서 노인에 대한 썩 유쾌하지 않은 통념들을 갖고 있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라면서 “차세대 노인들도 노후문제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서두르는 것은 물론 노인문제 전반에 적극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일부 ‘능력있고 현명한’ 노인들은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노년기 인생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젊음과 보람을 가질 수 있다며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60세 이상의 할머니가 야학을 운영하며 사회봉사를 한다든지, 외국어 자원봉사나 영어·한문강습 등을 한다는 얘기들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또 성을 즐기기 위해 70세 할아버지가 비아그라와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하고, 할머니는 호르몬 치료를 선호하다는 얘기가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보통 사람의 예는 아니지만 플라톤이 법률을 완성한 것이 80세이고, 프랭클린이 망원경을 발명한 것도 80세였으며, 평생 어부 베드로는 60세 이후에 각성해 새로운 그리스도의 삶을 열었고,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가게 앞 흰수염 달린 노신사도 64세 때 창업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내일의 먹거리’를 걱정해야 할 만큼 노후보장이 안된 국내 여건에서 노인들의 자아성취란 아직 요원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영규기자 ygko@kgib.co.kr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