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땅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채 이역에 뼈를 묻은 광복운동 선열들이 많다. 다행히 이름을 남겨도 대부분의 독립운동 지사들은 광복된 조국에서 아무 영화를 탐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일신을 희생하는데 대가나 보답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어려운 생활을 해야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정권들어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할 때 너희들은 뭣 했느냐”고 하는 권력 실세들이 있었다. 인정한다. 그래서 정권을 맡겼으면 나라 경영에 웅지를 펴라는 것이었지 나쁜 짓 하라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 구속 역시 그렇다. 그 어머니되는 이희호씨가 검찰 출두전에 전화를 건 아들에게 성경구절을 읊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도록 했다”느니, “참회록을 쓰는 심정으로 TV를 지켜봤다”느니 하는 박지원 비서실장 말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다. 혐의의 전후 사정에 비추어 성경이니, 참회니 하는 걸맞지 않는 말은 민중정서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김홍업씨가 “나나 형(김홍일의원)이야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도 받고 여러가지 경험을 했지만 홍걸이는 걱정”이라고 한 것도 틀렸다.
문제의 본질을 감상으로 물타기 해서는 안된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법처리를 민주화운동의 탄압과 비유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때 아버지가 연금 또는 구속되고 사선을 넘는 충격을 겪은 게 아버지를 등에 업은 오늘의 비리를 있게 한 상처로 변호될 수는 절대로 없다. 그렇다고 DJ가 수차 죽을 고비를 넘기고, 김홍일의원이 걷기조차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된 게 안기부 고문 때문인 사실을 간과하진 않는다. 그래서 DJ가 잘못하지 않았으면 크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고 김의원 또한 사회적 연민의 정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냉소의 대상이 됐다. 그 책임은 순전히 본인들에게 있다.
민주화 운동이 간곤했던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내 나라에서 했다. 일제치하 이민족에 항거한 독립운동과는 다르다. 민주화 운동은 또 이 정권의 몇몇 사람만이 한 게 아니다. 수 많은 유명, 무명의 희생이 있었다. 대통령가의 비리규명에 그 어떤 면죄부가 있을 수 없다. 홍걸씨에 이어 홍업씨도 검찰에 불려가 김성환씨와의 돈관계에 대한 사법처리가 예상된다. DJ의 아태재단 기부금 의혹도 규명돼야 할 과제다.
DJ집안 수사는 아무리 철저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이 소명을 이행해 가는 검찰수사에 감상적 접근은 그 어떤 것도 배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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