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 태극전사 엿보기/이영표(4)

한국 국가대표팀의 ‘꾀돌이’ 이영표.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때부터 학창시절을 줄곧 안양에서 보낸 이영표는 현재도 안양 LG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9년 6월 코리아컵때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후 한번의 낙오없이 3년동안 대표팀을 지켜온 이영표는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더 큰 무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올림픽팀에서 함께 뛰며 한국축구의 미래로 손꼽히던 많은 젊은 스타들이 국가대표에서 탈락되는 동안 이영표는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의 흔들림 없이 입지를 지켜왔다.

이영표는 팀내 체력측정때 이천수, 박지성 등과 선두를 다투는 ‘강철체력’에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 국내 정상급 드리블 실력을 갖춘 만능 미드필더로 평가 받고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무릎을 크데 다쳐 청소년대표 경력이 전혀 없는 이영표는 건국대 4학년이던 지난 99년 4월 뒤늦게 올림픽대표로 발탁된 뒤 2개월만인 6월 코리아컵에서 국가대표로 승격 됐고 2000년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확고한 입지를 지켰다.

2000년 5월 올림픽팀과 유고대표팀간의 1차 평가전에서 골키퍼도 손을 쓰지 못했던 상대 슈팅을 두차례나 막아내 ‘제2의 골키퍼’라는 별명을 받은 이영표는 그해 7월 한국과 중국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으며 화려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다.

올림픽대표시절 특유의 재치있는 돌파를 앞세워 왼쪽 윙백으로 활약했던 이영표는 히딩크사단에서는 김남일, 박지성 등과 더불어 공수의 조율을 이끄는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했다.

이영표는 본업이던 윙백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상대 공격라인을 일차 저지하는 임무를 맡는 한편 빠른 발을 이용한 활발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지원하는 살림꾼 역할로 주전의 자리를 굳혔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박목부상으로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 나서지 못하며 주춤하는 사이 같은 포지션의 김남일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또다른 수비형 미드필더 주전으로 떠올라 대표팀 발탁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주전자리를 위협받았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영표는 올초 북중미 골드컵에서 활발한 측면 및 중앙돌파로 공격에 가담, ‘미드필드의 프리맨’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며 수비에 치중하는 김남일과 조화를 이뤄 히딩크 감독의 신임을 재확인했다.

더욱이 터키와의 평가전에서는 오랜만에 자신의 본업인 왼쪽 윙백으로 위치를 옮겨 제 몫을 다함으로써 치열한 베스트11 경쟁에서 강한 생존력을 보여 주었다.

이영표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약점으로 꼽히고 있는 킥력과 센터링 능력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민수기자 jms@kgib.co.kr

<프로필>

▲생년월일=1977년4월23일

▲체격조건=176cm/66kg

▲포지션=미드필더

▲출신학교및 클럽=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건국대-안양 LG

▲국가대표팀 데뷔=1999년6월12일 멕시코전

▲국가대표팀경기 출전회수=49경기 출전 3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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