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떠오른 ‘테리우스’ 안정환.
90년대 말 고종수, 이동국과 함께 ‘신세대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한국축구의 부흥을 이끌었던 안정환은 현란한 드리블과 뛰어난 볼 키핑력 및 재빠른 상황 판단 능력, 반박자 빠른 슈팅 등을 무기로 축구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16일 스코틀랜드전에서 2골 1도움으로 대승을 이끌었고 22일 잉글랜드전에서는 상대수비숲을 헤집고 다니며 여러차레 득점찬스를 잡은 안정환이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출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많지 않다.
서울 본동초 4학년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안정환은 5학년때 대림초로 전학한 뒤 남서울중과 서울기계공고를 거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94년 수원의 아주대에 진학, 그 해 U-19 대표팀에 뽑히며 차세대 유망주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이후 대학선발과 부산 동아시아대표, 유니버시아드 대표 등 엘리트코스를 거친 안정환은 97년3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깜짝 선발돼 1개월만인 4월23일 중국과의 정기전에서 후반 교체투입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
그러나 2개월여 만에 대표팀에서 탈락하며 축구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좌절을 맛봐야 했고 98년 아주대를 졸업하면서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 고종수, 이동국과 함께 한국프로축구 중흥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안정환은 98년 K리그 베스트11과 브론즈슈상을 수상한 뒤 99년에는 흔히 말하는 ‘2년생 징크스’를 무시하듯 그라운드를 누비며 그해 K리그 MVP와 베스트11 등 각종 상을 휩쓸어 한국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그러나 K리그에서의 맹활약과는 달리 국가대표팀에서의 안정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99 코리아컵 첫 경기였던 멕시코전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A매치 데뷔골을 뽑아내긴 했지만 코리아컵에서의 전체적인 활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000 골드컵에서도 명성에 걸맞는 역할을 해주지 못한 안정환이 선택한 카드는 유럽행.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진출한 세계 최고 무대인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안정환의 드리블과 패스는 항상 한 템포씩 늦었고 타이트한 몸싸움에서도 안정환은 약점을 노출,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안정환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 코스미 감독의 인정을 받으며 시즌 15경기에 출장해 4골, 1도움을 기록,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했으나 이적 및 재임대 문제로 또 한차례 시련을 겪었고 감독의 신임마저 잃어 고난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생일대의 꿈인 월드컵 출전을 위해 이를 악문 안정환은 체력강화를 위한 트레이닝을 자청하는 등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은 4월20일 열렸던 코스타리카전.
안정환은 현란한 개인돌파와 날카로운 패싱, 중거리슛을 선보이며 팀의 공격을 주도했고 차두리의 선취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맹활약,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며 결국 최종 엔트리 23명에 포함되었다./정민수기자 jms@kgib.co.kr
<프로필>프로필>
▲생년월일=1976년1월27일
▲체격조건=177cm/71kg
▲포지션=미드필더/스트라이커
▲출신학교 및 클럽=서울 대림초-남서울중-서울기계공고-아주대-부산 아이콘스- 이탈리아 페루자
▲국가대표팀 데뷔=1997년4월23일 중국과의 정기전
▲대표팀경기 출전횟수=20경기 출장/4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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