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인가, 아니면 한여름인가. 바삐 살다보니 계절 감각마저 헷갈린다. 군상(群像)이 다 그래 보인다. 문득 중생이 가엽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 생활에 쫓기는 삶이 나쁘지만 않은 것 같다. 일기 예보에선 날마다 “오늘의 낮 기온이 어제보다 높다”고 예보한다. 오는 7월11일 초복을 시작으로 말복인 8월10일까지의 삼복 더위가 앞으로도 멀었다. ‘오늘이 어제보다 덥다’는 예보는 아직도 한참동안 더 듣게 마련이다.
수원 시가지에 녹지가 비교적 많은 것은 시민의 생활정서를 위해 퍽 다행이다. 만석공원의 일왕저수지 호반을 거닐면서 새삼 녹지의 고마움을 되새긴다. 저수지라기 보다는 논 농사의 관개(灌漑) 구실은 이미 끝냈으니 호수라는 게 제격이다. ‘만석호’라고 해야할 지 ‘일왕호’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명칭이 어떻든 석양무렵 호반의 망중한(忙中閑)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편안하다.
정인(情人)의 빈자리를 가슴에 채우노라면 풀 벌레 소리, 그리고 잠자리가 곡예를 부리며 반긴다. 이윽고 어둠이 드리워 호반따라 연이은 등불의 그림이 수면속에 깃들고, ‘2002 수원 월드 빌리지’가설무대 공연은 절정을 치달으며 월드컵의 열기를 뿜는다. 가족끼리 부부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삼삼오오 무리 지은 선남선녀(善男善女)의 만면엔 저마다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낮엔 어쩔수 없이 속좁고 급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는 이 밤이 여유로운 듯 싶다. 먹거리 전마다 기호(嗜好)따라 즐기는 식도락파,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산책객들이 줄을 잇는다.
사람이 차에 밀리는 게 아니고 차가 사람에게 밀린다. 그래서 차의 통행권보다 사람의 보행권이 우선하는 만석공원 인근의 밤거리는 인파의 쉼터가 된다. 이런 저런 사람들이 모여 서로 사람의 체취(體臭)를 느끼는 사람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한·일월드컵은 곧 수원월드컵이다. 수원이 지구촌에 뜨는 월드컵 바람이 축제를 이루는 한 곁에 6·13지방선거 후보자들 전단이 보인다. 그렇지, 지방선거도 있다. 월드컵도 있고 지방선거도 있는 것이다. 가로수 잎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속삭이듯 6월의 밤하늘에 나부낀다. 가로수 이파리가 유난히 더 크고 푸르러 보인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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