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의 문을 열었다

잘 싸웠다. 어제 오후 대구 월드컵축구장에서 가진 한국 대 미국과의 일전은 1대1로 비겼으나 잘 싸웠다. 볼 점유율과 슈팅 수에서 우리가 월등히 앞섰다. 게임을 거의 주도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없지 않다.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많이 놓쳤다. 페널티 킥도 실축했다. 선취점을 내준 것은 천려일실의 수비 허점이었다. 우리측 골키퍼와 단독으로 맞서는 노마크 찬스가 되도록 상대의 공격수, 즉 사람을 놓친 것은 순간적 방심이었다. 이런저런 실책 때문에 게임을 주도하면서도 흐름이 끊기곤하여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선수들도 컨디션이란 게 있다. 실책은 미국 선수들에게도 있었다. 전반전에서 황선홍선수의 유혈은 가슴 뭉클했다. 선혈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아도 낭자하였다. 머리를 붕대로 감아 싸고 그라운드를 종횡무진으로 누빈 것은 투혼이었다. 후반전서 안정환선수가 미국팀 문전에 띄운 미드필더의 도움 볼을 높이 치솟으며 머리로 받아 넘기는 고공폭격으로 실점을 만회한 것은 베스트 골 이었다.

안선수가 골을 성공시킨 헤딩 부위는 이마로 황선수가 부상당한 부위와 같다. 동료 선수의 부상을 골로 설욕한 셈이다. 한국 대표팀이 기량 및 전술면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룬것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대체로 각국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게 이번 한·일 월드컵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이다. 승패의 실력차가 마치 종이 한장 차이와 같다. 자신이 크게 잘해서 보다는 상대의 실책 때문에 승부가 나는 경우가 많다.

한·미전을 별 사고없이 치른 것 또한 다행이다. 역시 성숙된 면모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라운드에서는 상당한 격전이었다. 선수들이 서로 신경이 날카로웠던 때도 적잖았다. 그러나 추한 모습은 거의 없었다. 스탠드도 그렇고 길거리 응원도 비교적 질서정연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한국팀은 D조 마지막 경기로 오는 14일 인천 문학월드컵축구장서 갖는 포르투갈과의 대전을 남겨놓고 있다. 이 경기에서 최소한 비기기만 해도 1승2무 승점5로 대망의 16강에 드디어 진출한다. 미국에 덜미를 잡힌 포르투갈은 방심만 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해볼만한 상대다. 어쩌면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과 폴란드를 제물삼아 한국과 미국이 나란히 16강에 동반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대표팀은 D조리그의 마지막 일전을 위한 컨디션 조절과 기동력 및 전술력 발휘에 배수진의 각오로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국민적 성원의 열기는 여전히 더욱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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