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컬럼>붉은 악마, 붉은 유니폼

하필이면 왜 ‘붉은 악마’냐고 한다. 두 단어가 모두 거슬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하여 ‘악마’가 될 수 있느냐는 일부의 이의가 있었지만 반의어법이다. “좋아 죽겠다”는 어법과 같다. 우리의 말엔 이처럼 전래의 반의어법이 적잖다. ‘악마’는 ‘천사’의 반의어로 무기력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패기의 화신인 것이다. ‘붉은’단어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공산주의자를 가리켜 ‘빨갱이’라고 한데서 연유한다.

북측 혁명가에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하는 가사 대목이 있다. ‘3대혁명 붉은 기’라는 등 ‘붉은 기’를 선동적 구호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빨간 색깔로 한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대회부터다. 이에 앞서 4강 신화를 이룩한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주니어 대표팀이 빨간 유니폼을 입고 명성을 떨쳤다. 박종환감독이 이끌고 김종부 신현호 김판근 선수등이 뛰었다. ‘붉은 악마’라는 닉네임은 당시 대이변을 창출한 우리의 청소년 대표팀을 일컬어 외신이 충격적 표현으로 세계에 전파하면서 썼던 말이다. ‘붉은

악마’는 그 이후 우리의 반의어로 보편화되면서 붉은 유니폼이 대표팀의 상표로 자리 잡았다. 흰색이나 파란색의 보조 유니폼이 있지만 붉은 색깔이 대표적 유니폼이 됐다. 범국민적 응원단 ‘붉은 악마’의 유니폼 또한 이래서 붉은색이다. 한·일 월드컵이 무르익으면서 길거리 응원단들까지 붉은 셔츠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 지난

포르투갈과의 경기 땐 인천 시내에 붉은 셔츠가 동이나 없어서 못 팔았다. 붉은 천마저 귀해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교민사회에서도 붉은 셔츠바람이 유행인 모양이다. 그라운드의 선수들, 스탠드의 ‘붉은 악마’길거리 응원단들이 모두 붉은 색 일색이다.

지금이라고 우리 주변에 이념색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런게 두려운 단계는 지났다. 붉은색을 빨갱이 선입견으로 갖는 유치한 감정은 이제 아니다. 붉은 색은 정열이다. 우리 모두가 ‘붉은 악마’가 돼 오늘 밤 대전 한밭 벌판서 갖는 8강전에서 이탈리아 벽을 허물어내자. 월드컵 4강신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임양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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