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창, 즉 스피드가 힘의 축구인 이탈리아 방패를 뚫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역시 전통적 강호다웠다. 결국 방패는 뚫렸지만 창도 여간 힘겨웠던 게 아니다. 토티, 비에리, 인차기의 최전방 공격 삼각편대는 출중했고, 긴 패스를 이용한 순간 역습은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골리앗에게도 정수리의 허점은 있었다. 이탈리아 공격진이 깊숙히 비운 미드필더를 제대로 커버하지 못한 것은 대부분 한국의 찬스였다. 우리 대표팀은 강한 기동력과 조직력으로 미드필더를 압박함으로써 게임의 주도권을 되찾곤 하였다.
이탈리아는 스리백 중앙수비 외에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수비에 가담하곤 했지만 틈은 있었다. 빗장수비도 축구공만한 틈새는 없을 수 없었다. 최전방 공격과 최후방 수비간에 효과적인 공수를 펼치지 못한 것이 이탈리에겐 부담이 됐고 이런 상황발생은 한국 선수들의 교란작전이 크게 주효한데 있다. 스포츠는 파워와 스피드다. 복싱같은 격투기, 육상등 기록경기, 축구같은 팀경기의 특성에 따라 어느것이 더 우선하느냐는 차이는 있지만 승부는 파워와 스피드에서 판가름 난다. 한국과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이의 우열을 가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의 스피드가 이탈리아의 파워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직력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게임 전부터 가진 트라파토니 이탈리아팀 감독과의 신경전에서 허허실실 전법으로 이미 지피지기(知彼知己)했었다.
한국선수들은 다 제몫을 훌륭히 해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덜 잘했는가를 말하는 게 부질없는 것은 각자가 소임을 고르게 소화했으므로 인해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탈리아 세리A에서 뛴 안정환은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한국팀에 복귀하여 새로 조련된 기량과 체력은 이탈리아 공략에 괄목할 변신이었기 때문이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프랑스도 집에 가고 아르헨티나도 벌써 집으로 갔다. 포르투갈도 갔다. 한국팀은 포르투갈에 이어 이탈리아마저 집으로 보내 우승 후보국 킬러로 떠올랐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다크호스 북한에게 0-1로 져 8강진출을 좌절당한 이탈리아는 내각 인책소동이 벌어졌었다. 이번의 8강 좌절로 또 무슨 일이 있을지 궁금하지만 아직은 우리의 관심 밖이다. 당장은 4강 진출의 이정표를 넘어야 한다.
/임양은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