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 넘어 4강신화.. 기적같은 여정

○…한국축구 대표팀이 2002 한·일월드컵대회에서 4강으로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아시아 최강을 넘어 세계축구의 중심에 진입했다. 당초 목표가 월드컵 첫승과 16강 진출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전은 분명 한국축구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쾌거로 평가된다. 한·일월드컵에서의 한국축구대표팀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해본다. <편집자>

주>

①목표 초과 달성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

2002한일월드컵 개막 캘린더가 D-30을 가리키던 5월1일 낮 대한축구협회 회의실. 월드컵 최종엔트리를 발표하던 거스 히딩크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 서두에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비록 “실력과 운이 따라준다면”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당면 목표인 16강을 넘어 그 이상을 암시하는 듯한 감독의 패기에 찬 출사표는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국내 팬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표팀이 올초 해외 전지훈련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데다 엔트리 발표 직전 중국과 가진 홈 평가전에서 졸전 끝에 0대0으로 비겨 악화된 여론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잇단 풍파 속에 비틀거리던 히딩크호는 태극전사 23명의 최종 승선과 함께 거짓말처럼 쾌속 순항을 거듭하면서 ‘무적함대’로 변모해갔다.

5월16일 스코틀랜드를 4대1로 꺾은 기세는 잉글랜드전(1대1)과 프랑스전(2대3패)을통해 날개까지 달았고, 마침내 6월4일 항도 부산의 밤하늘에 붉은 구름이 솟게하는 월드컵 첫 승으로 이어졌다.

4일 폴란드를 2대0으로 이긴 것은 첫 본선무대였던 54년 스위스월드컵 이후 6차례의 도전 끝에 거둔 한국축구 사상 첫 승이자 세계축구사에 길이 남을 이변의 서곡이었다.

54년 2패, 86년 1무2패, 90년 3패, 94년 2무1패, 98년 1무2패. 2라운드 진출은 커녕 4무10패로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던 한국축구는 수모로 점철된 근대사에 마침표를 찍는 것과 동시에 전혀 꿈꾸지도 못했던 환희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히딩크호가 한국축구사를 다시 쓰는 데에는 첫 승리를 따낸 지 정확히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0일 숙적 미국과 아쉽게 비겨 다잡은 티켓을 놓쳤던 한국은 14일 월드컵 우승후보 중의 하나인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이 겨루는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미국과 비길 때만 하더라도 내심 반신반의하던 국내 축구인들도 세계를 놀라게하겠다던 히딩크 감독의 장담이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자 비로소 “히딩크가 옳았다”며 자세를 바꿨다.

히딩크는 그러나 16강 목표 달성에 만족하지 않았다.

팬들이 “이 정도면 됐다”고 할 때 대표팀의 눈은 이미 4강을 넘어 요코하마까지 넘보고 있었다.

히딩크는 결승토너먼트 이후 다음 대전이 유력한 팀 경기에는 노트와 마이크를 들고 반드시 나타나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로써 승리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무서우리만큼 철저한 사전 분석에 기초한 히딩크의 발언은 결국 한국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잇달아 누르고 4강에 진입하는 월드컵 최대의 이변을 연출함으로써 허풍이 아닌 진실이었음을 입증했다.

48년전 참패를 설욕하지 못하고 3·4위전에서 터키에 무릎을 꿇었지만 목표를 훨씬 초과 달성한 한국축구의 4강 진입은 분명 한국이 세계축구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알린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또한 국제무대에서 그 누구와 맞붙어도 두렵지 않은 자신감을 불어넣고, 동시에 학연과 지연으로 얽히고 설킨 국내 풍토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올 개혁의 수단으로써의 역할도 할 전망이다.

세계를 경악케한 히딩크의 공은 이제 우리 지도자들에게 넘어왔다./월드컵 특별취재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