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북한과 남북관계

작금의 북한을 두고 군맹무상(群盲撫象)의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배급제 폐지를 시장경제의 전환으로 보는 시각은 성급하다. 쌀이 귀해 배급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과제 도입을 중국식 개방·개혁으로 보는 정부의 관점은 근거가 희박하다. 경제난 타개를 위한 임시방편의 고육책일 뿐이다. 중국의 논평이 설득력을 갖는다. ‘국가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제한적 조치’라며 ‘시장경제를 도입하거나 중국식 개방·개혁의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북측 역시 중국의 개방·개혁이 경제성장에 크게 성공한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모르지 않으면서 중국의 모델을 따라가지 못한데는 이유가 있다. 체제와의 모순 때문이다. 개방·개혁, 시장경제는 저들이 고수를 다짐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와 상충된다. 수령론, 즉 김일성주의의 폐쇄성을 위협받는다. 평양정권이 이제 와서 새삼 ‘우리식 사회주의’를 포기, 중국처럼 개방·개혁하거나 시장경제 전환을 모색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국기(國基)차원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북한 경제 일련의 변화가 아무리 중국의 개혁 초기와 비슷하다 하여도 근원적 변화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주목할 점은 있다. 마지못한 제한적 조치가 기대하긴 어려우나 앞으로 점차 더욱 파급돼 근원적 변화 유도가 불가피할만한 대세화 형성 여부는 크게 지켜볼만 하다.

이런 가운데 돌연 서해교전의 유감표명과 함께 7차 남북장관(상)급 회담을 제의해온 것은 북측 사정의 급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이쪽 요구사항인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다짐 등이 비록 간과되긴 했으나 본회담 장소를 금강산으로만 고집하던 저들이 서울서 갖자면서 남북 철도 연결을 말하고 또 유감을 표명한 것은 저들대로 어느 정도는 물러선 것으로 볼만하다. 여기엔 쌀 30만t 지원을 포함한 경제지원의 실익과 더불어 서해도발로 이 정권의 대북정책에 치명상을 입힌데 대한 고려 등 다목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서해도발에 이은 장관(상)급회담 제의는 교란과 대화를 병행하는 타타담담(打打談談), 그리고 제한적 시장경제 조처는 절대 불변의 전략에 무한 가변의 전술을 구사하는 저들의 혁명 기본노선과 일치된다. 그러나 이를 알면서도 대화 파트너로 삼아야 하는 것은 동족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의 재발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신축성 있게 대응해야 하겠지만 더는 일방적으로 끌려가선 참다운 남북관계 개선에 유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