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7∼1955)은 독일 태생의 유대인이다. 1905년 특수상대상이론에 이어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정립, 191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근검 검소하면서 낙천적 성격을 지녔다. 1933년 나치에 쫓겨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의 일이다. 세계적 공항으로 아인슈타인의 생활이 어려울 것을 걱정한 몇몇 미국인들이 부친 돈을 몇달뒤 부인이 연구실 책갈피 속에서 발견해 냈다. 그것도 돈 부친 사람의 확인요청에
의해서였다. 이 때문에 미국서 살면서 부터는 아인슈타인의 성격을 안 미국인들이 연구비를 언제나 부인에게 건넸다. 말년에는 평화운동에 참가, 세계정부를 제창했다. 세기의 요정으로 불리운 여배우 먼로가 열렬히 사모하기도 했다. 한번은 아인슈타인의 연구실까지 찾아갔으나 유혹에 성공못한 일화가 있어 흡사 서화담과 황진이의 고사를 연상케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히는 아인슈타인의 광속이론이 도전받고 있다. 호주 시드니 메쿼리대학 이론물리학자 데이비스 교수는 최근 광속은 일정하지 않다며 빛의 속도는 절대적 고정불변(에너지는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은 값을 갖는다)으로 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 예로 우주 생성기인 우주대폭발의 광속은 무한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중국은 오는 9월말부터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아인슈타인의 생애 및 업적 전시회’를 갖기로 한 계획을 돌연 취소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널리 일깨우기 위해 모처럼 계획한 전시회를 취소한 것은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중국이 제공받기로 된 이스라엘의 아인슈타인 홍보물 가운데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며 이스라엘 정부창성을 지지했고 한때 이스라엘 대통령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부분을 삭제토록 요구했으나 이스라엘측이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중국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 아랍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평소 품어온 이스라엘의 불만이 결국 전시회 중단불사로 표출된 것으로 보는 관측이 더 유력하다. 이 전시회는 지난 2000년 장쩌민 중국 주석이 이스라엘 방문시 두 나라간에 모처럼 합의했던 게 무산됐다.
아인슈타인 사후 반세기가 거의 다 되어간다. 그에 대한 학문적 도전의 시도는 타당성 여부는 접어두고 일단은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정치적 이용은 고인을 모독하는 게 된다. 중국의 중동정책이 어떻든 간에 이스라엘이 같은 유대인이라 하여 아인슈타인을 홍보물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은 지나쳤다. 아인슈타인의 평화운동은 그런 게 아니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