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의 건전성이 악화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때문이다. IMF외환위기를 조기에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이 건전했던 탓이다. 그러나 IMF사태를 조기탈출한 대신에 건전성이 그만큼 악화되고 말았다. 산업 및 금융부실의 위기를 재정에서 흡수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데 있다. 정부는 공적자금 156조원 가운데 회수가 불가능한 69조원 중 49조원을 재정에서 부담키로 했다. 이를 25년간 해마다 2조원을 일반회계에서 충당한다고 하나, 현재가치가 아닌 경상가치로 따지면 57조원도 더 된다. 이만이 아니다. 세수증가와 지출축소를 통한 부담을 계산하면 이자를 포함하여 96조원에 이른다.
이런데도 국민은 막대한 이 돈을 왜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공적자금 69조원이 손실되고 이중 49조원을 재정이 갚아야 하는지 그 산출근거를 알지 못한다. 어쩌면 손실액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불신조차 팽배해 있다.
아무 죄없이 공적자금 손실액을 세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국민은 국민이익을 위한 예산의 제반 원칙을 침해당한다. 정부 방침은 전통적 예산명료의 원칙, 현대적 예산보고의 원칙 등에 명백히 저촉된다.
더욱 한심한 것은 책임의 실종이다. 공적자금이 그토록 손실났으면 공적자금을 집행한 정부당국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누가 어떻게 책임졌다는 사람 하나가 없다. 사생활에서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책임을 지는게 법치사회다. 하물며 국가사회가 국민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쳐놓고 아무 말한마디 없는 것은 법치정신을 일탈한 월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적자금 상환에 재정부담이 있으려면 마땅히 경위설명과 함께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는 공적자금의 재정부담을 앞두고 감면세 혜택을 크게 줄일 모양이다. 예산편성엔 사회복지비 등이 적잖게 장애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물가 상승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재정부담의 부작용은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더욱 심화할 게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공적자금조사특위 구성은 이래서 설득력이 있다. 국민에게 내역을 공개해 동의를 구하는 간접 절차가 될 수도 있다. IMF사태를 가져온 게 어느 정권인데 특위를 구성하자는 거냐는 민주당의 역공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전 정권이 IMF사태를 가져왔기 때문에 이 정권의 공적자금 운용이 방만해도 묵과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면책 사유는 성립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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