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자금 27조원’을 나 몰라라?

혈세를 쓰고서도 책임이 없다는 정부 태도는 심히 부당하다. 공공자금은 법률적으로 공적자금으로 지원하기 곤란한 경우에 지원된 돈이다. 공적자금 이외의 다른 모든 자금이 포함된다.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적자금 못지 않게 많은 돈을 투입한 게 공공자금이다. 공공자금은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를 통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출현했다는 점이 다를뿐 공적자금과 쓰임새에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공적자금에 비해 그동안 책임추궁이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당연히 공적자금과 똑같이 공공자금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이 필요하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말 이후 2002년 7월말까지 정부가 투입한 공공자금은 무려 총 27조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10조3천억원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투입됐고 나머지는 30개 은행들의 후순위채(6조 4천억원)를 사는 등 금융 구조조정에 쓰였다. 정부가 국유재산관리특별회계에서 보유하고 있던 정부 주식, 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도입한 차관자금 등을 국책은행 등에 투입한 것이다.

이 가운데 논란이 되는 것은 국책은행에 지원돼 정부 출자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 사용된 부분이다. 예컨대 외환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에 대한 여신이 부실화되면서 2차례에 걸쳐 8천억원 가량의 공공자금을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 받았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역시 당시 한보·대우그룹 등의 부실을 털어내는데 상당부분의 공공자금을 수혈

받았다.

그러나 공공자금을 지원받은 국책은행들은 공공자금 투입에 대한 원인규명과 조사 필요성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국책은행은 말 그대로 정부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은행이기 때문에 정책집행 과정에서 부실이 생겼더라도 이는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정부 역시 입장은 비슷하다. “국책은행에 투입된 돈은 어차피 정부자금”이라며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겼을 뿐인데, 이를 조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정부가 이렇게 무책임한가. 정책실패에 따른 책임추궁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책)은행원의 잘잘못을 밝히는 것보다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서 정책상의 잘못이 무엇인가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자금에 대해서는 공적자금보다 더 철저한 조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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