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 156조원 가운데 회수불능으로 확정된 69조원 등 방만한 운용실태를 따지는 것이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다. 그 소임이 막중한데도 정치권이 이에 임하는 자세는 지극히 실망스럽다. 우선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피감기관의 비협조를 들어 자칫 면죄부를 줄 우려가 있으므로 다음 정권에서 규명할 사안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소극적 판단이다.
물론 이번 국정조사의 성과에 관계없이 차기 정부의 철저한 재조사가 필요한 것은 불가피하다. 회수불능 자금을 재정으로 떠맡기 시작하는 것이 차기 정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우선 궁금해 하고 여야 합의사항인 국정조사를 야당이 포기하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설득력이 없다.
민주당의 태도는 공적자금 조사의지를 의심케 한다. 정부의 자료제출 회피를 비호하고 DJ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등 핵심증인 배제를 끈질기게 획책하는 것은 아직도 청와대의 시녀임을 드러낸다. 세풍관계자를 증인 채택하자는 엉뚱한 역공은 가히 가관의 극치다. 민주당이 송모의원을 특위간사로 내세운 것도 의문이다. 공적자금 9억5천만원을 빼돌린 대우자동차 판매회장에게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중인 의원을 공적자금 국정조사 특위에 인선한 당의 처사부터가 사리에 당치 않다. 공적자금이 필요하게 된 원죄와 공적자금 비리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환란을 가져온 것은 전 정권의 잘못이지만, 환란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자행된 비리를 묵인하는데 동의할 국민은 없다.
회수가 불가능한 69조원은 올 정부예산 117조원의 절반이 훨씬 넘는다. 국민 1인당 부담액이 이자를 포함, 현재 가치로 무려 143만5천원에 이른다. 공적자금을 빼돌린 비리는 부실 기업인의 모럴 헤저드에 기인한 건 물론이다. 하지만 공돈처럼 빼먹을 수 있었던 게 은행이나 당국의 묵과없이 가능했는지 의문이다. 공적자금을 특정 기업에 집중 지원한 배경에 이같은 의혹이 더욱 증폭된다. 앞으로 공적자금 상환으로 재정의 건전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 우려된다. 일이 이 지경인데도 정부에선 그 누구 하나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권력의 비리개입에 그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국정조사 중 아시안게임이 열려 조사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국민에게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판단 자료가 된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으로 조사를 호도하려 들면 결코 유익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적극성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속 드러내는 잔재주로는 진실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모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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