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없는 켈리방북

부시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북·미회담에 북측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장막에 가려졌다. 다만 켈리가 서울에 와서 전한 것은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가 있었다는 것 뿐이다. 그러나 북·미간의 입장 차이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자 ‘위대한 선군(先軍)사상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전진하는 우리 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현 시대에는 군대의 위력이 사회주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면서 “누구나 다 선군사상의 절대적인 신봉자, 숭배자가 될 것”을 역설했다.

또 평양방송은 6일 “미국 행정부가 적대정책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없애기 위한 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며 미국의 적대행위 포기를 먼저 요구했다. 켈리가 평양을 떠나기가 바쁘게 나온 노동신문과 평양방송의 이같은 발표는 매우 주목된다. 미국측 관심사인 핵문제는 이미 북·일회담에서 밝힌 ‘핵관련 합의사안 준수’ ‘미사일 시험발사 연기’등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한 것 외에 켈리가 들고 갈 새로운 보따리를 쥐어준 게 아무것도 없다.

이밖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 해결, 재래식 전력 감축, 인권 문제 등엔 종전의 입장을 여전히 되풀이 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21개월만에 처음 가진 북·미회담은 결국 다음 회담도 기약하지 못한채 무위로 끝났다. 어떤 ‘깜짝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여겼던 관측통들의 당초 기대와는 달리 북측이 보인 이같은 강경 입장에는 이유가 없지 않다.

우선 북·일정상회담에서 시인한 일본인 납치 문제로 북측 안팎이 예상밖의 곤란에 처한 사실이 간과되기 어렵다. 신의주 특구의 양빈 행정장관이 중국에서 체포돼 특구선언 벽두부터 봉착한 난관 또한 무관하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한적 시장경제의 시도에 대한 내부 반발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켈리의 평양 방문은 북·미간에 강경파만 득세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곧 있을 북·일 후속회담 또한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이 당장 더 악화되기는 어렵다. 대 이라크 개전여부가 더 시급하고 11월 중간선거 등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정권 때까지 대북 접근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는 관측도 성립된다. 이 정부는 북·미간의 관계 개선에 희망적 낙관만 해왔을 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미 양측에 끌려만 다닌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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