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에 극비 로비설이 관련된 최규선 문건의 뉴스위크 한국판 보도는 충격이다. 일본 열도는 올 노벨상에 고시바 마사토시의 물리학상, 다나카 고이치의 화학상 등 잇따른 수상 낭보로 환성의 도가니에 잠겨 있다. 이런 판에 지난해 받은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 스켄들에 휩쌓이는 것은 유감이다. 대통령의 수상엔 내치의 실정으로 다소 냉소적 사회정서가 없지 않았으나, 어떻든 우리로선 첫 수상이란 점에서 가졌던 대승적 견지에서 가졌던 긍지가 그나마 훼손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최씨는 1998년 김 대통령 당선자 보좌역을 지낸 실세 측근으로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배경삼아 각종 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문제의 문건은 ‘M프로젝트’와 ‘블루 카펫 프로젝트’로 블루 카펫은 노벨상 수상식에서 까는 푸른 융단을 의미한다. 내용은 서너개의 세계적 인권상을 미리 수상하고 노벨상 선정위원에 대한 맨투맨식 접근, 외국인 인맥을 통한 섭외 등으로 됐다. 이같은 프로젝트가 실제로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믿고싶지 않으나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는 자체가 수치다.
이에 청와대는 ‘최씨 혼자 만든 문건으로 터무니 없다’고 발뺌을 하지만 1999년 4월2일 당시 박지원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에게 보낸 것으로 된 팩스 문건은 그 정황이 사뭇 구체적이다. 루스벨트 자유상을 섭외한 내용으로 ‘루스벨트재단 휴블 이사장이 대통령님께 올리는 편지를 보내와 수석님께 전한다’는 문맥은 결코 최씨 단독 작품의 시나리오로 보기가 어렵다.
또 김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남북관계가 풀려가지고 노벨평화상도 받을거야. 그때도 자네가 역할을 해줘”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최씨의 증언과 무관하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다. 이 문건을 보도한 16일자 뉴스위크 한국판은 당초 표지에 실었던 박지원씨 사진을 삭제하기 위해 하루늦게 발매한 것으로 알려져 외압설마저 일고 있다. 물론 그 진위는 확인할 수 없으나 전후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가 보도된 최씨 문건 내용에 대해 단순히 ‘아니다’라는 부인으로 석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차라리 인정할 부분은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의 제반 의혹에 처음에는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뒤늦게는 사실로 밝혀지곤 했던 경험에 비추어도 무작정 단독 문건으로 몰아대는 것은 무익하다. 최씨가 아무리 권력지향적이었다 해도 혼자 그같은 수상 로비문건을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객관적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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