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곡리 백제 적석총 발굴의미

서기 2∼3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백제 돌무지무덤(적석층)이 연천군 학곡리에서 발굴됐다. 기전문화재연구원은 임진강과 바로 인접 강가 모래 언덕에 위치한 학곡리 백제 적석총 1기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돌무지 봉분 1곳에 4개의 묘곽을 조성한 소위 다곽식(多槨式)무덤임을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의 경우 전형적 백제토기인 타날문토기를 비롯해 낙랑계로 추정되는 토기와 경질무문토기가 함께 출토돼 있으며 구슬 목걸이와 청동방울, 대롱옥(관옥·管玉)등 100여점이 수습됐다.

이번 조사결과는 ‘삼국사기’에 기재돼 있는 백제초기기사의 신빙성이 더욱 입증되고, 그 건국주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확보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둘수 있다. 또 적석총이 고구려의 영역이었던 북한과 임진강 상류의 황해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통일시대를 맞아 남북한 공동발굴 및 연구를 위한 우선순위의 유적이라는 점에서도 학문외적인 의미가 크다.

축조연대를 2∼3세기로 보는 근거를 발굴단은 전반적 출토 유물이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학곡리 적석총 인근 파주 주월리 육계토성 주거 유적보다 빠른데다, 고구려 유물은 없는 반면 낙랑계 토기가 확인되며, 경질무문토기가 함께 출토되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적석총이 다곽식으로 장기간 누차적인 축조과정을 거쳤을 것으로도 판단되고 고구려 적석총과 통하고 있으므로 ‘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고구려 유·이민이 남하하는 기원전후에 축조됐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번 발굴성과는 풍납토성과 함께 3세기 중·후반 고이왕 이전 초기 백제실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재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백제의 건국시기를 3세기 후반으로 잡고 있던 학계정서설이 뒤집힐 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적석총은 연천 삼곶리·군남리, 양평 문호리, 충북 제원 교리·도하리,강원 화천 관척리 등에서도 발견된다는데 그렇다면 한성백제의 영역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수 있는 귀중한 유적지로 평가된다.

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은 그동안 많은 매장 문화재를 발굴함으로써 고대사연구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백제건국의 의문을 풀어 낼 고고학적 자료가 될 연천 학곡리 적석총을 발굴한 노고를 거듭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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