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천자춘추/’안성맞춤’의 고장
유승렬(안성문화마을 원장·도예가)
필자는 도자기를 통해 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그러기에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자 애쓰고 있고,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한다.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말하자면 ‘안성맞춤’이라는 말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안성은 이미 삼국시대에 그 지리적·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삼국간의 각축의 장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여러 전란때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는 중요한 전략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안성의 지리적 위치는 이후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삼남에서 한양을 잇는 요충지로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선 3대장의 하나인 안성장을 꽃 피우게 됐다. 이렇게 시장이 발달하니 자연스럽게 사람의 왕래가 잦아지고, 그로 인해 각종 수공업기술이 발달하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것이 바로 ‘안성유기’였다. 놋쇠로 만든 생활도구를 유기라고 하는데, 유기그릇 제작방법은 주물, 방짜, 반방짜등 세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 안성유기는 주물유기인데 안성의 유기는 그 모양이 아담하고 정교할 뿐더러 견고하고 품질이 매우 좋아 이름이 높았다.
특히 한양의 양반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특별히 그 품질과 모양을 좋게 하는 것을 ‘모춤’이라 하였는데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즉 안성에다가 유기를 주문하면 그 품질과 모양이 주문자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다는 의미에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긴것이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일반명사로 쓰이는 것이다.
안성에는 지금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7호이신 김근수옹을 통해 안성유기의 명맥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안성맞춤 박물관이 개관하여 유기를 중심으로한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안성맞춤’은 결국 신용이고 믿음이다. 그 ‘안성맞춤’이 과거의 명성이 아닌 오늘날도 사람살기 안성맞춤인 고장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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